서해까지 퍼진 밍크고래의 비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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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고래사냥꾼 동해서 옮겨와

불법 고래사냥꾼들이 밍크고래를 작살로 잡은 뒤 배 위에서 껍질과 20cm 두께 살만 떼어내 양파망에 담은 모습. 해경 제공
불법 고래사냥꾼들이 밍크고래를 작살로 잡은 뒤 배 위에서 껍질과 20cm 두께 살만 떼어내 양파망에 담은 모습. 해경 제공

 8일 오전 8시 50분경 충남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 북서쪽 70km 해상. 작살이 꽂힌 밍크고래 등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다. 작살에 연결된 쇠줄에 부표가 3개나 매달려 있어 밍크고래는 잠수를 할 수 없었다. 숨을 헐떡거리는 밍크고래 주변으로 배 서너 척이 선회했다.

 배에 탄 고래사냥꾼들은 밍크고래가 피를 많이 흘려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고를 받은 해경이 출동하자 불법 고래잡이로 의심 가는 배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주했다.

 한국에선 고래사냥이 금지돼 있다. 우연히 그물에 걸려 죽거나 자연사한 고래에 한해 거래를 할 수 있다. 해경에 따르면 국내의 밍크고래 연평균 소비량은 260마리. 그물에 걸려 죽거나 자연사한 밍크고래는 연평균 76마리에 불과해 나머지 180여 마리 중 상당수는 불법 포획된 것으로 추정된다.

○ 개조한 어선으로 포획 나서

 서해해양경비안전본부는 올해 5월까지 밍크고래 불법 포획 단속을 강화한다고 30일 밝혔다. 밍크고래는 동해(800여 마리)보다 고래가 살기에 좋은 대륙붕이 넓게 분포된 서해(1000여 마리)에 많이 사는 것으로 추산된다.

 고래사냥꾼들은 주 활동 무대를 동해에서 서해로 옮기는 추세다. 해경은 전남 목포시 북항과 영광군 낙월면 안마도를 고래사냥꾼들 집결지로 지목했다. 고래사냥꾼들은 전남지역 항구에서 어선을 빌려 합법 조업을 하는 것처럼 위장한다. 이들은 빌린 배를 개조해 난간을 없애고 최고 시속 70km까지 높인다. 배 한 척에 포수 등 5명이 타고 잡은 고래를 해체하는 작업을 배 위에서 끝낸다. 먹는 부위인 껍질과 두께 20cm가량의 살을 발라내고 나머지는 바다에 버린다.

 단속을 피하기 위한 수법은 상당히 치밀하다. 고래를 잡고 해체 작업을 마치고 나면 세제로 선박 구석구석을 청소해 고래 유전자 채취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작살도 은밀하게 숨긴다. 2014년 해경 해체 이후 고래 불법 사냥이 더 기승을 부린다는 분석도 있다.

○ ‘귀신고래→참고래→밍크고래’ 남획

 과거 한반도 연안에서 남획된 고래는 대형 귀신고래(최대 몸길이 15m, 몸무게 36t까지 자람)다. 미국 동물학자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는 1912년 한반도 연안의 귀신고래를 세계에 처음 알렸다. 일제는 1911년부터 1933년까지 한반도 연안에서 귀신고래 1304마리를 잡은 것으로 집계했다. 이후에도 남획이 계속돼 결국 1970년대 한국 연안에서 귀신고래는 사라졌다. 그 대신 대형 참고래(최대 몸길이 27m, 몸무게 114t까지 자람)가 사냥돼 거의 자취를 감췄다. 이후 중형 밍크고래가 주 사냥감이 됐다.

 밍크고래 고기 250g은 10만 원가량에 팔리고 있다. 고래사냥꾼들 사이에서는 ‘고래는 덩치가 클수록 맛이 좋다. 큰 고래를 잡으면 한몫 챙길 수 있다’는 말이 퍼져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에 따르면 전 세계의 고래 89종 가운데 한반도 연안에는 돌고래, 밍크고래, 혹등고래 등 30종이 서식한다. 이 중 밍크고래 참돌고래 낫돌고래(동해), 상괭이(서해·남해), 남방큰돌고래(제주)가 자주 출몰한다. 이 5종 가운데 밍크고래가 가장 덩치가 크다. 밍크고래는 수명이 80년 정도로 길이는 7m까지 자라며 무게는 14t에 달한다.

 고래사냥에 대한 찬반은 엇갈리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고래가 오징어 멸치 새우 등을 잡아먹기 때문에 어족 관리를 위한 제한적 포획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고래가 배설 작용을 통해 심해 광물질을 연안에 공급하는 등 해양 생태계 유지에 중요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손호선 연구관은 “불법 포획과 혼획(混獲·다른 어종이 함께 잡히는 것)으로 고래가 사라지면 해양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목포=이형주 peneye09@donga.com /정성택 기자
#고래#포획#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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