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거목’ 박맹호 민음사 회장 별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3일 03시 00분


단행본 시대 열어… 작가 발굴 앞장… 출판계 “큰 어른 잃었다” 애도

 “출판 일은 ‘영원한 벤처사업’이다. 요즘 출판시장이 불황이라고 얘기하지만 50년 넘도록 언제나 사정은 비슷했다. 출판인이 할 일은 좋은 책을 내서 좋은 시장을 만드는 것뿐이다. 그런 모험심이 사라질 때 출판의 역사는 끝날 거다.”

  ‘사람들의 올곧은 소리를 담는다’는 뜻의 회사명을 내건 출판그룹 민음사(民音社)의 설립자 박맹호 회장(사진)이 22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출판계 관계자들은 생전 그가 후배들에게 강조한 출판인의 마음가짐을 회고하며 “말없이 행동과 눈빛으로 한국 출판계의 현대화에 앞장섰던 큰 어른을 잃었다”고 애통해했다.

 고인은 1966년 서울 종로구 청진동 10m² 남짓한 크기의 옥탑방에 민음사를 열어 일본 책 번역서나 전집 생산에 치우쳤던 국내 출판계 풍토를 양질의 기획 단행본 중심으로 변모시켰다. 1974년부터 ‘오늘의 시인 총서’ 시리즈를 내 김수영 고은 황동규 등 당대 젊은 시인들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 1977년 제정한 ‘오늘의 작가상’을 통해 이문열 한수산 최승호 등 현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발굴했다. 처음으로 단행본 가로쓰기를 도입하고 새로운 판형과 표지디자인 변화를 추구하는 등 국내 출판계의 새 시대를 열어낸 주인공으로 평가받는다.

  ‘이데아총서’(1977년) ‘대우학술총서’(1983년) 시리즈를 통해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인문학과 자연과학 출판 시장을 개척했다. 신구문화사 편집자로 일하던 정병규 씨(현 정병규디자인 대표)의 일본 유학을 지원한 뒤 그와 협력해 혁신적인 책 디자인을 선보였다. 1991년 편집부 직원 이영준 씨를 주간으로 발탁한 것도 파격이었다. 작가나 학자가 아닌 전문 편집자가 주도하는 새 출판문화를 처음 연 것이다.

 2012년 낸 자서전 ‘책’의 발문을 쓴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매년 1월에 찾아뵈었다. 10년 전 간 이식 수술을 받은 뒤 갈수록 쇠약해졌지만 언제나 맑은 정신과 품위를 잃지 않았다”고 말했다. 홍지웅 열린책들 대표는 “처음 출판 사업자등록을 하고 나서 무작정 민음사 옥탑방 사무실로 인사드린다고 찾아갔을 때 일면식 없는 후배에게 ‘좋은 책 오래 내라’고 다독여 주던 기억이 선연하다”고 말했다.

 유족으로 부인 위은숙 씨와 자녀 상희(비룡소 대표이사) 근섭(민음사 대표이사) 상준 씨(사이언스북스 대표이사), 며느리 김세희(민음인 대표) 김현희 씨(아주대 미디어학과 교수)가 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발인은 24일 오전 6시. 02-2072-2020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박맹호#민음사#회장#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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