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불혹에 이른 ‘음성 꽃동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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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오웅진 신부가 설립
수도자-국내외 수십만 봉사자들, 노숙인-장애인 등 4000여명 돌봐

8일 40주년 기념행사 열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국내 최대 사회복지시설의 모태가 된 고 최귀동 할아버지(왼쪽사진 왼쪽)와 오웅진 신부. 18명의 걸인으로 시작한 꽃동네(오른쪽 사진)는 현재 4000여 명의 수용인과 1100여 명의 수도자와 직원이 있는 국내 최대 사회복지시설로 성장했다. 음성 꽃동네 제공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국내 최대 사회복지시설의 모태가 된 고 최귀동 할아버지(왼쪽사진 왼쪽)와 오웅진 신부. 18명의 걸인으로 시작한 꽃동네(오른쪽 사진)는 현재 4000여 명의 수용인과 1100여 명의 수도자와 직원이 있는 국내 최대 사회복지시설로 성장했다. 음성 꽃동네 제공
국내 최대 사회복지시설인 충북 음성 ‘꽃동네’가 설립 40주년을 맞는다.

꽃동네는 8일 오후 1시 반 ‘꽃동네낙원’(꽃동네 법인묘지)에서 장봉훈 천주교 청주교구 주교, 오스발도 파딜랴 주한 교황청 대사, 전국 꽃동네 회원, 시설 가족 등 5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꽃동네 설립 4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고 7일 밝혔다. 행사는 예수의 꽃동네 수도자 찬미단의 묵주 및 찬미 기도를 시작으로 감사 미사, 기념식, 축하연의 순으로 진행된다.

음성 꽃동네는 1976년 9월 무극천주교회에 부임했던 오웅진 신부(71)가 우연히 최귀동 할아버지(?∼1990)를 만난 게 설립의 시초가 됐다.

최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음성군 금왕읍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강제 징용됐다가 병든 몸으로 고향에 돌아와 무극천 다리 밑에서 걸인 생활을 했다. 자신도 불편한 몸이지만 밥 동냥을 해 병든 걸인들을 먹여 살렸다. 오 신부는 최 할아버지를 통해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임을 깨닫고 당시 가지고 있던 돈 1300원으로 무극리 용담산 기슭에 방 다섯 칸짜리 ‘사랑의 집’을 지어 이들을 입주시켰다. 이 집이 지금의 꽃동네로 성장했다. ‘작은 예수’, ‘거지 성자’로 불린 최 할아버지는 1986년 2월 한국가톨릭대상을 받았다.

현재 꽃동네에는 350여 명의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 자매회 수도자와 800여 명의 직원, 수십만 명의 국내외 봉사자들이 있다. 이들은 음성꽃동네와 경기 가평꽃동네에 있는 입양기관, 아동 보육, 노숙인, 장애인, 노인요양시설 등에 있는 4000여 명의 시설 가족들을 돌보고 있다. 1999년에는 사회복지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꽃동네대학교(청주시 서원구 현도면)를 설립했다.

또 중국과 필리핀, 방글라데시, 인도, 우간다. 아이티 등 세계 12개국에 꽃동네를 세우고 수도자를 파견해 전 세계에 사랑과 평화의 정신을 전파하고 있다. 2014년 8월 16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음성꽃동네를 찾아 수도자와 시설 가족들을 격려했다. 043-879-0100∼3

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음성 꽃동네#꽃동네낙원#오웅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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