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車서 물 한모금 못마시고 얼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일 03시 00분


폭염속 통학버스에 8시간 방치… 네살배기 유치원생 의식불명
교사 “인기척 없어”… 기사는 확인안해… 光州경찰, 원장 등 4명 입건

“기본적인 안전도 지키지 않은 어이없는 사고에 피눈물이 납니다. (버스에 갇히면) 어른도 몇 분 버티기가 힘든데 8시간이나 고통스러웠을 아이를 생각하니….”

유치원 통학버스 내부에 방치됐다가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최모 군(4)의 아버지(43)는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아버지는 폭염 속 찜통이나 다름없었던 통학버스에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쓰러진 아들을 떠올리면 심장이 오그라든다고 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난달 29일 오전 7시 최 군은 출근길 아버지에게 밝은 표정으로 인사했다. 1시간 뒤 엄마 이모 씨(37)와 함께 집 앞 편의점에 가 평소 갖고 싶었던 장난감이 든 초콜릿을 한 개 샀다. 그리고 오전 9시 “잘 다녀오라”라며 손을 흔드는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유치원 통학버스에 탔다.

최 군을 태운 버스는 1km 떨어진 유치원에 1분여 만에 도착했다. 인솔 교사 정모 씨(28·여)가 먼저 내려 다른 어린이 8명의 하차를 도왔다. 운전사 임모 씨(51)는 통학버스를 세차한 뒤 유치원에서 1.5km 떨어진 도로에 주차했다. 그리고 문을 잠갔다.

임 씨가 다시 통학버스를 찾은 건 8시간 가까이 지난 오후 4시 40분경. 찜통처럼 뜨거워진 버스 내부를 환기시키기 위해 창문을 열던 중 뒤쪽에서 두 번째 의자에 쓰러져 있던 최 군을 발견했다. 이날 광주의 낮 최고기온은 35.3도까지 치솟았다. 최 군은 전남대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나 위독하다.

올해 제정된 광주시교육청 통학버스 안전규칙에 따르면 인솔 교사와 운전사는 어린이가 통학버스에 승하차할 때 반드시 뒷좌석까지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정 씨는 경찰에서 “내부를 살펴봤는데 인기척이 없었다”라고 진술했다. 임 씨는 “인솔교사가 확인한 것으로 믿었다”라고 했다. 그러나 최 군의 아버지는 “집과 유치원 사이 운행 시간이 1분에 불과한데 잠이 들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차량 내부를 아예 살펴보지 않은 것 아니냐”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유치원은 평소 원생 180명이 생활했지만 이날은 방학이라 30명이 등원했다. 하지만 원장 박모 씨(52·여)와 주임교사 이모 씨(34·여)도 원생들의 출석을 점검하지 않았다. 광주지방경찰청은 31일 정 씨 등 4명을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통학버스에 탑승한 어린이들에게 당시 상황을 들어보는 등 각종 의문점들을 확인할 방침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통학버스에 어린이가 방치되는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1일에는 광주의 한 어린이집에서 운영하던 12인승 통학버스에 이모 양(5)이 2시간가량 갇혔다. 이 양은 다행히 잠겨 있지 않은 버스의 문을 스스로 열고 나와 화를 면했다. 어린이집 측은 원생들의 하차는 물론 등원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았고, 점심시간을 앞두고서야 이 양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뒤늦게 어린이집 입구에서 우는 이 양의 울음소리를 듣고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광주북부경찰서는 당시 정황이 담긴 폐쇄회로(CC)TV 자료를 삭제한 혐의(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으로 어린이집 관계자 2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지난해 1월부터 어린이 통학차량 안전 관리를 강화한 ‘세림이법’(개정 도로교통법)이 시행됐지만 현장의 안전 불감증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외국은 어린이 통학차량 안전 관리가 매우 엄격하다. 미국은 어린이들이 모두 차에서 내린 뒤 운전자가 전 좌석을 확인해야만 정상 운행할 수 있다. 허억 가천대 교수(어린이 안전학교 대표)는 “운전사나 인솔교사들이 하차 순간만 지켜보는 일이 많다”라며 “안전관리의 기본은 정확한 인원 파악”이라고 말했다.

광주=이형주 peneye09@donga.com / 박성민 기자
#폭염#통학버스#유치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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