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사님, 이게 무슨 청천벽력입니까…” ‘곡성 공무원’ 애도 이어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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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양대진 씨 가족의 단란했던 나들이 모습(맨위쪽 사진). 곧 태어날 둘째 아이를 기다리던 양 씨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사랑하는
 가족 곁을 떠났다. 곡성군청 미화원 장춘재 씨는 조의금과 함께 그를 추모하는 편지를 남겼다. 곡성군 제공
숨진 양대진 씨 가족의 단란했던 나들이 모습(맨위쪽 사진). 곧 태어날 둘째 아이를 기다리던 양 씨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사랑하는 가족 곁을 떠났다. 곡성군청 미화원 장춘재 씨는 조의금과 함께 그를 추모하는 편지를 남겼다. 곡성군 제공
“진심 어린 사과를 받으면…. 악몽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겠죠.”

2일 오후 7시 광주 북구 그린장례식장. 이틀 전 아파트에서 떨어진 유모 씨(25·대학생)와 충돌해 숨진 전남 곡성군청 공무원 양대진 씨(39)의 장인(64)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힘없이 말했다. 사고 다음 날인 1일 오전 빈소를 찾은 유 씨 가족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양 씨 유족들을 찾은 건 유 씨의 아버지(57)와 형(28)이었다. 이들은 유족 앞에서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지만 충격에 빠진 유족들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유 씨 아버지의 ‘보상’ 약속도 거절했다. 두 가족의 불편한 만남은 한숨과 눈물 속에서 얼마 가지 않아 끝났다. 이 자리에서 유족들은 유 씨 가족이 43m² 크기의 영구임대아파트에 살면서 경제적 능력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눈앞에서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을 목격한 양 씨의 아내(36)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아내는 “남편을 숨지게 한 유 씨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며 힘들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나마 양 씨의 아들(6)은 엄마가 현장을 막아 당시 상황을 정확히 못 본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3일 광주 북구 영락공원에서 양 씨의 장례를 가족장으로 치른다. 유 씨의 장례는 2일 치러졌고 같은 공원묘지에 묻혔다. 양 씨의 장례가 끝나면 유족들은 유 씨 가족을 다시 만나기로 했다. 유 씨의 아버지는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기로 했다.

남은 양 씨의 아내와 아들은 장례식 후 정든 보금자리를 떠날 계획이다. 양 씨의 한 유족은 “졸지에 가장을 잃은 사건으로 가정이 풍비박산 났다”며 “(유 씨를) 용서하면 좋겠지만 아직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투신자살한 유 씨도 어려운 가정형편에 취업 부담에 내몰린 청년이라니 답답할 뿐”이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평소 양 씨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곡성군청에서 미화원으로 일하는 장춘재 씨(74)는 2일 조의금 50만 원을 전달했다. 장 씨는 ‘양 주사(주무관의 옛 명칭)님, 청천벽력에 이게 무슨 일입니까. 부모를 탓해야 할지 세상을 나무라야 할지 이것밖에 드릴 말이 없습니다’라는 글도 함께 남겼다. 장 씨가 매일 오전 6시 군청 청소를 시작할 때 항상 첫 인사를 건네던 직원이 바로 양 씨였다. 장 씨는 3년 내내 가장 먼저 출근 도장을 찍던 양 씨를 떠올리며 “예의가 바른 데다 열성적인 인재였는데 어쩌다…”라며 울먹였다. 그는 “고인이 사고 당일에도 늦게까지 야근을 하다 변을 당한 만큼 반드시 공상처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남 곡성경찰서에서 홍보 업무를 담당하는 한 여경도 조의금을 전하며 “말없이 늘 성실했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 양 씨의 공직 초임지인 경기 여주시의 한 공무원은 곡성군 홈페이지에 ‘성실한 친구였는데,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는데…’라는 글을 남겼다.

사건을 수사했던 광주 북부경찰서에도 한 시민이 성금 100만 원을 기부했다. 경찰은 양 씨 가족들에 대한 범죄 피해보상금 지원을 건의하기로 했다. 또 끔찍한 사고를 목격한 아내와 아들에 대한 심리치료를 돕기로 했다.

곡성군은 정례조회와 직원교육을 모두 취소하고 고인을 추모했다. 유근기 군수를 비롯한 공무원들은 밤늦게까지 빈소를 지키며 고인을 애도하고 있다. 곡성군은 양 씨가 순직처리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곡성#공무원#투신 자살#사고#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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