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체육 특기생 장혜수 양(14·가명)은 대회 참가 등으로 외국에 나갈 일이 많다. 하지만 미성년자인 장 양은 일반 여권을 발급받을 수 없다. 친권을 가진 친부모와 연락이 두절됐기 때문이다. 위탁부모가 신원보증을 해 신청하면 단수여권(외국 한 나라만 다녀올 수 있는 여권)만 받을 수 있다. 최근 일본에 갔다가 바로 미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할 일이 있었는데, 장 양은 다시 한국에 들어와 여권을 재발급받은 후 미국으로 떠나야 했다. 위탁부모는 아이의 양육을 오롯이 하고 있지만 부모로서의 권한은 하나도 없다.
5월 22일은 올해로 13년을 맞은 가정위탁의 날이다. 2003년 시작된 가정위탁은 학대, 방임, 질병, 빈곤, 장애 등으로 부모가 아동을 양육할 수 없을 때 위탁가정이 일정 기간 아동을 보호, 양육하는 복지 제도. 유형은 △외·조부모 △외·조부모 제외한 친인척 △혈연관계가 없는 일반인에 의한 양육으로 구분된다. 2015년 말 기준 가정위탁 중인 아동은 1만3000여 명. 이중 외·조부모 위탁이 69.2%, 친인척 위탁이 23.0%, 일반인 위탁이 7.8%를 차지한다.
가정위탁은 위탁부모의 호적에 아동을 올리지 않기 때문에 입양과 다르다. 따라서 위탁부모는 미성년인 위탁 아동에 대한 법적 권한이 하나도 없다. 가령 아동의 명의로 통장을 개설하고 보험에 가입하며 휴대전화를 개설해주고 싶어도 위탁부모는 속만 태울 뿐이다. 모두 친권자인 친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권 발급도 장 양의 사례처럼 단수여권만 가능하다. 심지어 아동이 수술을 받을 때에도 위탁부모는 동의서를 쓸 자격이 없다. 실제로 위탁 아동이 위급한 수술을 앞두고 있는데, 친부모와 연락이 되지 않아 애먹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처럼 위탁 부모와 아동이 겪는 불편과 상처가 적지 않음에도 친권을 중요시 하는 한국 풍토에서 친부모의 친권을 제한하는 건 쉽지 않다. 물론 위탁부모도 가정법원에 후견인(법적대리인) 청구를 할 수 있다. 후견인이 되면 앞서 지적한 문제들이 상당수 해소된다. 하지만 재판을 진행해야 하고 수임료가 들어가며 기간도 6개월 이상 소요된다. 정필현 중앙가정위탁지원센터 관장은 “후견인 청구 제도를 간소화해서 위탁부모가 좀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중앙가정위탁지원센터는 후견인 청구를 하는 위탁부모를 대상으로 법률 지원을 해주고 있다.
강현아 숙명여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아동복지법 개정을 통해 보호가 필요한 아동만이라도 예외적으로 친부모의 친권을 제한하고 위탁부모나 정부, 지자체 등이 친권 대행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은 아동이 학대 등의 이유로 부모에게 분리돼 정부의 보호체계 안으로 들어오면 부모의 친권이 자동으로 정지되고 주 정부가 권한을 갖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부모가 아동학대로 인해 형사처벌을 받아도 친권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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