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통령직속 규제개혁위원회는 올해 말부터 시행이 예정된 흡연 폐해 경고 그림의 표기 위치를 담뱃갑 상단으로 정한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철회를 권고했다. 규개위에 따르면 상단 표기의 효과에 대한 실증적 입증자료가 부족하고, 담뱃갑 경고 그림이 시행되면 이를 가리기 위해 진열대를 교체할 텐데 이렇게 되면 효과는 낮은 반면 불필요한 진열대 교체비용만 소요될 것이기 때문에 굳이 규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국제조약인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은 우리나라와 같은 가입 당사국들이 주요 표시면의 50% 이상의 면적에 흡연 폐해를 알리는 경고 표시(그림 포함)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경고 표시는 넓은 면적, 상단 표기, 명시성과 가시성을 구비할 것을 요구한다.
보건복지부는 이미 경고 그림을 시행하는 대다수 당사국이 상단에 경고 그림을 표기한 사실 등을 근거로 상단 배치를 규정했다. 국제협약의 가이드라인은 협약조항을 국내법에 반영해서 이행하는 데 참고하도록 협약에 따라 하위 법규로 정해진 것이다. 법률의 시행을 위해서 시행령을 정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렇다면 국내법 시행을 위한 하위법령에서 협약가이드라인을 따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작은 담뱃갑의 상단이 하단보다 가시성이 높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명백하다. 그런데도 상단이 하단보다 효과가 있다는 실증적 효과를 입증하라는 규개위의 주장은 국민이 아니라 담배업자의 입장에서 제도를 바라본 것이나 다름없다.
최근 유럽최고재판소는 경고 면적이 65% 이상 되도록 정한 유럽연합(EU)의 담배규제 지침이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인도 대법원은 담뱃갑에 경고 표시 면적을 85% 이상으로 규정한 제도에 대해 반발한 담배회사들의 주장을 배척했다. 우리나라는 2014년 담배규제기본협약 의장국으로 세계 각국의 대표를 초청해서 협약 총회라는 거창한 국제행사를 치렀으며, 담배 세금을 올리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 심의 시에는 바로 이 협약에 부합하므로 적절한 규제라고 결정했다. 세금 올리기나 경고 표시 강화나 모두 협약에서 정한 것을 국내법으로 신설한 것인데 세금인상 정책 시에는 존중하고, 국민건강을 증진시키려는 정책에는 무시한다면 정책의 신뢰성이 크게 훼손된다.
경고 그림은 흡연자들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우리 청소년들을 화려한 담뱃갑 광고로부터 보호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상단에 담배광고가 있는 것과 경고 그림이 있는 것을 비교해보면 답은 명확하다. 논의의 전제가 되었던 경고 그림을 가리기 위한 진열대도 입법을 통해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정부가 밝혔다. 위원회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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