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전관의 몰래 변론-퇴직공직자 로펌 유령영업, 형사처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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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협, 67년만에 변호사법 개정안 마련… 법무부에 제출

법무법인(로펌)에 고문으로 영입돼 사실상 로비스트 역할을 하는 퇴직공직자와 선임계를 내지 않고 변론활동을 하는 ‘몰래 변론’ 변호사를 형사처벌하는 변호사법 개정을 대한변호사협회가 추진 중인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지금까지 비리 변호사 등에 대해 과태료를 물리는 정도에 그치는 처벌 수위를 앞으로는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대폭 높인 것이 핵심이다.

○ 법조비리 근절 위해 변호사법 개정

대한변호사협회(회장 하창우)는 정부 고위직에 있다가 로펌 고문으로 영업을 하거나 고위직 출신 전관의 ‘몰래 변론’, 공직에서 퇴직한 변호사의 1년 수임제한 규정을 위반한 사람에게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변호사법 개정안을 만들어 17일 법무부에 제출했다.

국내 개업 변호사들이 가입해야 하는 법정(法定) 변호사 단체인 대한변협이 변호사법 전면 개정에 나선 것은 1949년 변호사법이 제정된 이후 67년 만에 처음이다. 변협은 최근 1년간 각종 징계사례를 모으고 법조비리 현황을 조사 연구해 개정안을 마련했다.

대한변협이 변호사법 개정을 추진한 것은 법조 비리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대한변협에 등록된 변호사는 2만395명. 국내 법률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부정과 비리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비리 변호사 징계개시 신청 건수도 2013년 73건, 2014년 185건, 2015년 245건(1∼11월)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법무부도 법원, 변협 등이 참여하는 ‘법조 브로커 척결 태스크포스(TF)’를 지난해 구성해 법조 비리에 공동대응하고 있다.

하창우 대한변협 회장은 “법조비리를 척결하는 데 현행 변호사법이 놓치고 있는 것이 많아 이를 규율하는 새로운 규정을 신설했다”며 “법무부가 조속히 검토해 정부안으로 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과태료 징계를 징역형으로 형사처벌

개정안에 따르면 이른바 ‘몰래 변론’을 통해 사건을 수임하고 고액 수수료를 받는 전관 변호사들에게는 과태료가 아니라 징역 1년 이하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최교일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2014년 7월 서울중앙지검에 선임계를 내지 않고 변호사 업무를 한 ‘몰래 변론’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형 로펌이 변호사가 아닌 퇴직공직자를 영입하고 명단을 신고하지 않거나 업무기록을 제출하지 않는 경우에도 형사처벌이 가능하게 했다. 지난해 8월 대한변협은 전직 고위공직자를 영입하고도 영업신고 등을 하지 않은 대형 로펌을 적발했지만 징계 처분에 그쳤다. 지식경제부, 법제처 등 출신의 고위 공무원 30여 명이 대상이었다. 또 공직에서 퇴직한 변호사가 근무한 국가기관이 처리하는 사건을 1년간 수임할 수 없도록 한 규정을 위반한 경우에도 징역 1년 이하 등에 처하도록 만들었다.

개정안은 현행 변호사법에서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는 사안 가운데 심각한 경우 처벌 수위를 높였다. 공무원 등으로 직무상 취급한 사건을 변호사로 개업해 수임하지 못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1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는데, 변협은 이를 3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 수위를 높였다. 국세청, 경찰 등에서 근무한 변호사가 공무원으로 있으면서 취급한 사건을 변호사로 개업해 수임한 경우가 주로 해당된다.

○ 대형 로펌 겨냥?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개업 변호사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측면이 강해 국회를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실제로 그간 변호사단체가 의원발의 형태로 낸 개정안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또 법조 비리 대책으로 마련된 개정안 내용이 지나치게 형사처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법조계의 자정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개정안을 둘러싸고 법조계 내부의 갈등도 예상되고 있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개정안은 대형 로펌을 겨냥해 만든 것”이라며 “퇴직공직자를 영입하며 단순 실수로 신고를 누락하는 경우에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지나치게 무거운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 ‘김앤장’ 같은 공동법률사무소도 처벌대상 포함 ▼

지금은 법위반 제재 ‘법무법인’ 한정… 문제 불거질때마다 징계 피해가


대한변호사협회는 변호사법 개정안에 전관 출신 변호사의 수임 제한 규정을 ‘김앤장’ 등 공동법률사무소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새롭게 포함시켰다. 개정안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김앤장’ 등 공동법률사무소도 변호사법 위반으로 인한 징계를 법무법인과 똑같이 받게 된다. 국내 10대 로펌 중 유일하게 공동법률사무소 형태인 곳은 국내 1위 로펌인 김앤장뿐이다.

변호사법 제31조에 따르면 “공무원·조정위원 또는 중재인으로서 직무상 취급하거나 취급하게 된 사건‘의 수임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 등 형사처벌이 가능하고 해당 법무법인, 법무조합 등에도 제재를 가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공동법률사무소는 적용 범위에서 제외돼 법무법인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실제 로펌의 전관 변호사나 퇴임 공무원의 문제가 불거질 때 ‘김앤장’은 공동법률사무소라는 이유로 ‘솜방망이’ 징계를 받는 데 그친 경우가 많았다. 공동법률사무소는 개별 사무소가 모인 조합 형태의 로펌으로 사건 수임부터 처리까지 모두 개별 단위로 이뤄져 그동안 징계 대상이나 범위가 명확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대한변협이 전직 고위 공직자를 영입하고도 영업 신고를 하지 않은 대형 로펌 4곳을 징계 조치했지만 김앤장만 공동법률사무소라는 이유로 대표나 로펌이 징계를 피했다. 그 대신 퇴직 공직자 명단 제출 업무를 맡고 있는 주모 변호사만 징계를 받았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은 공동법률사무소에도 변호사법상 징계나 형사처벌을 명확하게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고 말했다.

배석준 eulius@donga.com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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