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전문기자의 그림엽서]우리 일상이 곧 관광 상품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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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저녁 뉴욕 맨해튼 중심가를 운행하며 뉴요커의 일상을 재밌게 보여주는 관람버스. 뉴욕=조성하 기자 summer@donga.com
매일 저녁 뉴욕 맨해튼 중심가를 운행하며 뉴요커의 일상을 재밌게 보여주는 관람버스. 뉴욕=조성하 기자 summer@donga.com
조성하 전문기자
조성하 전문기자
2년 전 뉴욕 시 취재 중에 ‘더 라이드(The Ride)’라는 버스 투어에 올랐다. 버스 자체부터 특별했다. 한 면과 천장 절반이 통유리창이고 검게 칠해져 있어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다. 버스의 좌석은 유리창을 향해 객석처럼 3단계로 되어 있다. 이것만 보면 뉴욕 거리를 감상하는 그저 그런 투어쯤으로 생각하기 쉽다. 물론 실제로도 그렇다. 타임스스퀘어를 출발한 버스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42번가를 경유해 센트럴파크를 오간다. 맨해튼 중심가를 1시간 15분간 운행하는 투어다.

그런데 그게 전부라면 75달러(약 9만3800원)나 내고 이 버스에 오를 리 없다. 버스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라운드 시스템에선 멋진 음악이 흘러나오고, 두 명의 사회자가 재미있는 멘트로 분위기를 띄운다. 가라오케 반주에 맞춰 노래도 부를 수 있다. 실내도 화려하다. 3000개의 발광다이오드(LED) 조명과 40대의 평면 TV가 발산하는 조명과 영상으로 클럽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 덕분에 버스는 탑승 자체만으로도 즐겁다.

하지만 이것도 75달러의 가치에는 못 미친다. 스쳐 지나가는 맨해튼의 빌딩도, 뉴욕의 화려한 거리 풍경도 좋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 그건 바로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뉴요커, 즉 ‘사람들’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 버스투어의 핵심 가치다. 전혀 낯선 곳에선 그곳 사람들의 일상 자체가 볼거리가 되는 것이다. 나는 평소 ‘관광은 일상을 파는 비즈니스’라고 생각해 왔다. 뉴욕의 버스 투어가 바로 그렇다.

더 라이드는 ‘뉴요커 일상관찰 투어’다. 그렇지만 그 일상을 관찰하는 방법이 특이하다. 그게 이 투어가 주는 궁극의 즐거움이다. 그 즐거움은 뉴욕의 DNA라 할 만하다. 그 덕분에 뉴욕 시가 극적으로 내게 다가왔다. ‘극적’이라고 한 건 뉴욕이 브로드웨이와 오프브로드웨이를 자랑하는 뮤지컬과 연극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더 라이드의 버스는 객석이고 창밖의 맨해튼 거리는 무대다. 따라서 행인은 등장인물이다. 버스 투어는 몰래카메라 상황으로 치닫는데 게서 예상치 못한 일을 목격한다. 신호대기 중인 버스 앞에서 빗질하던 청소부가 갑자기 빗자루를 든 채 미친 듯이 노래하며 탭댄스를 춘다. 컬럼비아서클을 돌 때는 로터리 광장에 튀튀(짧은 치마의 발레복) 차림의 발레리나가 나타나 한 신사와 멋들어지게 춤을 춘다.

이런 상황을 행인 입장에서 상상해 보라. 멀쩡한 청소부가 느닷없이 춤을 추어대고 자동차가 끊임없이 지나는 광장에서 발레리나가 공연을 하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그런 행인의 행동과 표정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걸음을 멈추고 우두커니 서서 보는 사람, 안됐다는 표정으로 외면하는 사람, 이때다 싶어 스마트폰을 눌러대는 사람, 춤을 따라 추며 동참하는 사람…. 붐비던 거리를 일순간 혼돈에 빠뜨린 해프닝이 노린 건 바로 각본에 없는, 행인들의 이런 다양한 반응들이다. 그런데 버스 승객에겐 이게 진짜 볼거리다. 그리고 그 해프닝은 이를 눈치 챈 일부 행인과 출연자가 버스 승객을 향해 환히 웃으며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막은 내리지만 여운은 길다. 이런 해프닝이 1시간 15분 동안 예닐곱 번이나 벌어진다.

뉴욕의 거리를 거대한 무대로 삼은 버스 투어의 발상은 신선하다. 버스 밖에서 벌어지는, 말이 필요 없는 연극을 보며 버스 승객들은 관객으로서 대단히 유쾌한 경험을 한다. 그러니 이 버스의 승객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요즘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늘어난 중국인 관광객(遊客·유커)으로 고민이 많다. 이들이 마구 버린 담배꽁초 때문이다. 일본도 그럴까.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만 그럴까. 그 답을 나는 우리 일상에서 찾는다. 일본인의 흡연율(20.7%)은 우리(21.6%)와 비슷하다. 하지만 거리 흡연은 드물다. 휴대용 재떨이는 일본에만 있는 특산품. 따라서 꽁초 던지기는 일상이 아니다. 우리는 어떨까. 도심만 벗어나면 담배를 피우며 거리를 활보한다. 쓰레기통이 사리진 거리에서 꽁초가 갈 곳은 뻔하다. 유커의 눈엔 이게 한국인의 일상이다. 그러니 따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할밖에.

서울의 꿈은 뉴욕 파리 런던처럼 매력적인 도시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의 일상부터 매력적으로 바꿔야 한다. 관광사업은 우리의 일상이 곧 상품이므로.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관광 상품#일상#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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