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에서 10시간 넘게 서 있으면 허리는 굽고 다리는 퉁퉁 붓고 어깨도 돌처럼 굳죠. 근데 마음 편히 팔다리를 펼 곳조차 없어요.”
워킹맘인 A 씨의 일터는 서울 시내의 한 유명 백화점이다. 하지만 A 씨는 근무시간 12시간 중 점심시간을 포함해 1시간 30분 외에는 의자에 몸을 붙일 틈도 없는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잠시 짬이 날 때에는 몸을 누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A 씨를 포함해 1층에서 일하는 직원 120명이 쉴 곳은 8평(약 26m²) 남짓한 작은 방 하나뿐. 난방기도 없어 겨울철엔 입김까지 나오는 이곳에서 A 씨와 동료들은 ‘핫팩’으로 손을 녹이며 ‘짧은 휴식’을 취한다.
15년째 한 면세점에서 근무해 온 B 씨(38)의 사정도 비슷하다. B 씨는 13년 전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에도 변변한 휴게실조차 없어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했다. 직원은 1000명이 넘는데 쉴 곳은 환기도 제대로 안되는 지하 2층의 작은 방 한 칸뿐이었다. B 씨는 “휴게실에 자리가 없으면 부른 배를 잡고 계단에 박스를 깐 채 쉴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아이를 기르는 일은 더욱 난관이었다. 직원 대부분이 여성인데도 수유실이 없어 B 씨는 남자 직원들이 언제 불쑥 들어올지 모르는 물품창고에서 마음을 졸이며 유축(손이나 기계 등으로 젖을 짜놓는 것)을 해야만 했다. B 씨는 “13년 동안 직원은 두 배 이상 늘었는데 휴게실은 고작 2개 더 늘었다”고 하소연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면세점과 같은 유통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제대로 쉴 곳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5월부터 10월까지 한국노동사회연구소와 함께 전국 114개 사업장의 노동환경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26일 발표했다. 이들 사업장의 휴게실 수용 인원은 평균 백화점 21명, 면세점 47명, 할인점 23명이었다. 근무시간 대부분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업무를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 본점 및 인천공항 면세점은 휴게실 이용 가능 인원이 직원 100명당 한 명도 되지 않았다.
감정 피해 사례도 많았고 신체적 건강도 위험한 수준이었다. 34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1%는 지난 1년 동안 고객으로부터 폭언과 폭행, 성희롱 등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9명은 ‘회사의 요구대로 고객에게 맞추는 감정 표현을 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44.7%는 목과 허리, 다리 등 근육과 관절에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중구의 한 할인매장에서 일하는 김모 씨는 “여자 종업원들 중 하지정맥류에 안 걸린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고용 불안정도 심각했다. 계약기간이 1년 미만인 비정규직 근로자 비율은 61.3%로 국내 전체 근로자 평균(35.5%)의 두 배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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