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 백발의 주인공들 “슛, 골인… 설움 날렸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세계 한민족 축구대회 참가한 파독 광부-간호사들

9일 강원 춘천시 공지천 인조잔디구장에서 열린 ‘전 세계 한민족 축구대회’ 개회식에 참가한 독일선수단과 대회 관계자들. 선수단 대부분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 출신으로 구성됐다. 전 세계 한민족 축구연합회 제공
9일 강원 춘천시 공지천 인조잔디구장에서 열린 ‘전 세계 한민족 축구대회’ 개회식에 참가한 독일선수단과 대회 관계자들. 선수단 대부분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 출신으로 구성됐다. 전 세계 한민족 축구연합회 제공
“영화 ‘국제시장’을 보며 펑펑 울었습니다. 모두 내 얘기 같아서….”

10일 오후 강원 춘천시 중앙로 춘천관광호텔에서 만난 손종원 씨(70)의 표정은 살짝 상기돼 있었다. 파독 광부 출신인 그는 9일 개막한 제10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배 전 세계 한민족 축구대회에 독일 선수단장 자격으로 참가했다. 손 씨는 1970년 독일에 건너가 계약 기간인 3년 동안 광부로 일한 뒤 귀국 대신 정착을 선택했다. 파독 간호사였던 아내를 만나 결혼했고 과수원 경영, 무역업 등 다양한 일을 했다.

손 씨는 “낙반 사고로 동료를 잃기도 했고 다친 사람은 너무 많이 봤다”며 “남의 땅에서 고생한 거야 말로 다 못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산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처음 독일에 갈 때 공항까지 따라와 ‘가지 말라’고 애원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손 씨와 함께 이번 대회에 참가한 독일 선수단은 약 50명. 대부분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이뤄졌다. 모두가 영화 국제시장의 실존 인물인 셈이다. 독일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기에 고국을 자주 찾고 있지만 그때마다 설레는 마음은 여전하다.

1971년 간호사로 독일을 찾았던 김영희 씨(64·여)는 “독일에서 겪은 젊은 날의 고생은 가족을 위한 책임감이 없었다면 참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이제는 한국에 올 때마다 눈에 띄게 발전한 모습에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또 “한국에 와서 호떡, 찐만두 등 독일에선 접할 수 없는 우리 음식을 먹을 때 그동안 쌓였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눈 녹듯 사라진다”며 소감을 밝혔다.

선수단의 최고령자인 김공부 씨(81)는 대학을 휴학하고 1965년 독일로 떠나 50년을 살았다. 김 씨는 “유럽의 어느 도시도 한국의 도시처럼 활기찬 곳이 없다”며 “타향살이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아직도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독일 선수단의 대회 참가는 지난해 전국체육대회에서 손 씨와 김성수 전 세계 한민족 축구연합회 회장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축구를 통한 교포들과의 교류 및 민족 동질성 회복이라는 대회 취지를 들은 손 씨가 참가를 결심한 것이다. 광부 시절부터 동료들과 함께 축구를 즐긴 점도 영향을 미쳤다. 독일에서도 한인회가 주관이 돼 향우회 대항 축구대회, 3·1절 기념 축구대회 등 다채로운 축구 행사가 열린다.

이번 대회에서 독일 선수단은 어디를 가나 큰 환영을 받고 있다. 8일 열린 환영 만찬에서도, 9일 개회식에서도 나라별 소개 때 가장 많은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10일 열린 실버부 경기에서는 부산팀과 겨뤄 2 대 2로 비겼다. 경기 결과를 떠나서 해외 동포들과 만나 정을 나눈 경험이 이들에게 가장 큰 기쁨이었다. 손 씨는 “독일에 남아 있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4000명 정도인데 그 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다”며 “내년 대회에도 꼭 참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3일까지 춘천시 송암스포츠타운 등에서 열리는 전 세계 한민족 축구대회에는 해외 12개국에서 22개 팀, 국내 20개 팀 등 1000여 명이 참가했다.

춘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