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젊을때 새긴 김일성花-문구 南정착후 이웃들은 “깡패냐” 경계
경찰-의사회 도움으로 제거 수술… “취업 등 새로운 삶 열어줘 감사”
무더운 여름에도 반소매 옷을 입을 수 없었다. 왼쪽 팔뚝에 새겨진 ‘김일성화(花)’ 문신 때문이다. 더위에 잠깐 소매를 걷기라도 하면 “이 문신은 무슨 의미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호기심 어린 시선은 어김없이 경계심 담긴 시선으로 바뀌었다. 탈북민 임정훈(가명·49) 씨에게 팔뚝에 새겨진 문신은 2010년 한국에 온 뒤 ‘주홍글씨’처럼 임 씨를 괴롭혔다. 김일성화는 1965년 김일성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을 때 수카르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이름 붙여 준 난초과의 꽃이다. 임 씨도 북한에서 군복무 중이던 20대 초반 동료와 함께 충성의 의미로 선뜻 왼쪽 팔에 문신을 새겼다. 북한에서 군인은 충성 문구를 담은 문신을 일종의 자랑거리로 여겼다.
하지만 젊은 시절 자랑거리로 여겼던 문신이 한국에 오자 정착의 최대 장애물이 돼 버렸다. 이 문신을 개의치 않던 북한과 달리 한국에선 거부감이 컸다. 임 씨를 호의적으로 대하던 이웃도 문신을 본 뒤로는 슬금슬금 피하거나 “깡패나 이런 문신을 하고 다닌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특히 문신 때문에 취업에서 수차례 고배를 마셨다. 약 250만 원이면 수술로 문신을 제거할 수 있지만 무직 상태의 임 씨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비용이었다.
낙담해 있던 임 씨에게 5월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서울용산경찰서와 대한성형외과의사회의 지원으로 문신 제거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수술로 문신을 제거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임 씨는 꿈꾸던 취업에도 성공했다. 임 씨는 “젊은 시절 자랑스럽게 여긴 문신이 한국에서 이렇게 큰 ‘족쇄’가 될 줄 몰랐다”며 “문신을 지우고 새로운 삶의 기회를 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탈북민들에게 성형수술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주는 지원 프로그램은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됐다. 용산경찰서가 대한성형외과의사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의사들의 재능 기부를 통해 탈북민에게 무료 성형수술을 지원하면서부터다. 화상·문신·기형 등 외모 때문에 생활에 불편을 겪고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민이 대상이다. 경찰은 현재까지 탈북민 8명에게 성형수술을 해 줬다. 이 중 4명은 북한에서 새긴 문신을 제거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지원 프로그램이 탈북민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신청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치료를 받은 8명 외에 치료 대기 중인 사람만 33명에 이른다. 경찰은 의사들과의 협력을 통해 탈북민 지원을 계속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탈북민 성형수술 지원 프로그램을 맡아 운영하는 김경숙 용산경찰서 보안계장은 “외모 문제로 고민하던 탈북민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안정적인 정착을 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지원 프로그램을 계속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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