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은 걱정 없을것” 방심하다가… 주력제품마저 고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일 03시 00분


[‘3중 절벽’ 내몰린 수출코리아]

한국이 ‘수출 쇼크’에 직면한 것은 기업과 정부 모두 수출 호황이 계속될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은 기술 혁신에 뒤처져 일본을 추격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에 따라잡히고, 정부는 규제 완화와 구조 개혁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구축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세계 시장의 큰 흐름이 바뀌는 현실을 외면한 채 과거 수출 주도형 모델에 안주해 신성장 사업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가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 기술력, 환율 모두 경쟁력 상실

현재 세계는 경기 둔화의 여파로 교역량이 줄고 있다. 1분기(1∼3월) 국제 교역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감소했는데 이는 2009년 1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이다. 국가 간 교역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수출 부진은 예고된 현상이다.

실제 2014년 기준 수출 금액 상위 1∼10위 국가 가운데 1분기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늘어난 국가는 ‘세계의 공장’인 중국(4.7%)밖에 없다. 한국의 1분기 수출 감소율은 2.9%다. 수출 감소 현상을 겪는 주요국 중 한국보다 수출이 적게 줄어든 나라는 홍콩(1.9%) 정도다.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1분기 수출이 15% 이상 줄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의 수출 부진이 유독 심각하게 보이는 것은 자체 내수시장이 워낙 빈약해 수출 길이 막힐 경우 경제 전체가 휘청거리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수출과 내수가 모두 위축되면서 경제 수준이 한 단계 하락하는 상황을 ‘축소 균형’으로 표현하면서 이 상태가 지속되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기업이 수십 년 된 주력 상품에 집착하며 기술 혁신을 게을리한 것이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씨티그룹에 따르면 중국의 기술력은 2012년경 한국의 86% 수준에 불과했지만 2014년에는 한국의 89% 수준으로 향상됐다. 시간으로 환산한 한중 기술 격차가 2012년 1.9년에서 2014년 1.4년으로 감소한 것이다. 반면 한일 기술 격차는 2012년 3.1년에서 2014년 2.8년으로 0.3년 줄어드는 데 그쳤다. 한국이 일본을 거북이걸음으로 추격하는 동안 중국은 한국을 토끼처럼 쫓아온 셈이다.

한국은 기존의 기술력만으로는 버티기 어렵게 됐다. 전체 수출에서 13%의 비중을 차지하는 석유 및 석유화학업계는 과거 원유 정제 기술이 다른 나라보다 비교 우위에 있어 큰 이익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동 지역 산유국들이 원유만 수출하는 게 아니라 기술력을 축적해 정유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한국 업체들의 정제 마진이 크게 줄어든 이유다.

○ “내수에 기여할 서비스업 육성 필요”

수출 가격에 영향을 주는 외환시장 여건도 한국에 불리한 편이다. 원-달러 환율은 2012년 1130∼1150원대에서 최근 1090∼1100원대로 하락해 원화 강세 양상이 뚜렷해졌다. 반면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2012년 77엔 선에서 최근 123엔대로 상승(엔화 가치는 하락)했다. 전형적인 엔화 약세 국면이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유로화도 달러화에 비해 약세를 보이고 있다. 자국 통화 가치가 떨어지면 달러화로 표시되는 수출품 가격이 하락해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데 한국은 글로벌 환율 전쟁 흐름에서 벗어나 ‘외톨이 강세’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수출 감소는 제조업 분야의 일자리를 줄여 소득 감소, 소비 감소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수출이 100만 달러 늘면 일자리 7.2개가 생긴다. 이를 역으로 단순 계산하면 수출이 올해 1∼5월 중 132억7800만 달러 감소함에 따라 일자리 9만500여 개가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수출 감소를 막으려면 세계 교역량이 줄고 산업 구조가 재편되는 흐름을 감안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경제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금리 인하를 통해 원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단기 대책뿐 아니라 산업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신기술 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세계 교역이 줄어드는 현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내수시장을 키우는 서비스업 육성에 정책의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홍수용 legman@donga.com / 정세진 기자
#수출#절벽#방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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