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났을 땐 완강기가 생명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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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주제는 ‘안전’]<60>고층건물 대피요령 아세요?

지난달 30일 본보 취재기자가 완강기를 타고 건물 밖으로 내려가고 있다. 천안=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지난달 30일 본보 취재기자가 완강기를 타고 건물 밖으로 내려가고 있다. 천안=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완강기 탈 줄은 아니? 1회용도 있다던데 집에 있는 건 1회용 아니니?”

1년 전쯤 지금의 4층 원룸으로 이사 왔을 때부터 어머니는 “완강기 사용법을 정확히 배워야 한다”고 강하게 당부했다. 살펴보니 한쪽 벽에는 빨간 글씨로 ‘완강기’라고 쓰인 안내판과 완강기 지지대가 붙어 있고 바닥에는 완강기가 담긴 플라스틱 박스가 놓여 있었다. 완강기는 고층건물에 불이 났을 때 몸에 밧줄을 매고 천천히 내려갈 수 있도록 만든 비상용 기구다. 문제는 기자뿐만 아니라 딸의 안전에 노심초사하는 어머니도 완강기를 어떻게 쓰는 건지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상자 130명이 발생한 1월 경기 의정부 아파트 화재 당시 완강기로 탈출한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완강기를 썼더라면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전문가 분석이 이어졌다. 충남 천안시 국가민방위재난안전교육원에서 기자가 완강기를 체험해봤다. 완강기는 머리 위 지지대에 걸린 고리, 가슴에 매는 벨트와 건물 밑에 있는 밧줄 뭉치가 전부였다. 청소년수련원이나 유원지 등에서 탈 수 있는 집라인처럼 앉아서 타거나 손으로 줄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터라 완강기를 본 순간부터 겁에 질렸다.

교육담당자의 지시대로 벨트를 겨드랑이에 끼우고 벨트가 헐렁해지지 않게 고리로 조였다. 팔을 위로 올리면 벨트가 머리 위로 빠져 추락할 위험이 있으므로 팔은 아래쪽으로 내려야 한다. 완강기를 타고 내려올 때는 건물 바깥벽을 바라보고 팔을 약간 앞으로 뻗어 벽에 부딪히지 않게 한 뒤 손바닥으로 벽을 짚으면서 내려온다. 두 발은 어깨 넓이 정도로 벌리고 아래쪽으로 쭉 뻗는다. 손발에 닿는 부분이 없어 처음엔 꽤나 불안했다. 가정에서 완강기를 사용할 때는 완강기 고리를 지지대에 잘 걸고 밧줄뭉치를 창문 밖으로 던진 다음 줄을 매고 내려와야 한다. 간이 완강기는 1회용으로 한 명만 탈출할 수 있으므로 집에 비치된 완강기가 간이용인지 미리 점검해야 한다.

3층 높이 정도지만 막상 벨트 하나에 몸을 맡기고 내려오려면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괜찮으니 안전봉을 꽉 잡은 손을 놓고 내려가라’는 지시에도 한참 만에야 간신히 손을 놓을 수 있었다. 땅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에야 ‘생각보다 안 무서운데?’ 하는 생각이 든다. 완강기는 초당 1m를 내려오는데 긴장할 만큼 빠른 속도는 아니다. 다만 미리 완강기 사용법을 숙지하고 직접 체험해보지 않으면 위급할 때 침착하게 탈출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는 보라매안전체험관과 광나루안전체험관에서 인터넷이나 전화로 신청하면 완강기를 체험할 수 있다. 단체 예약도 가능하며 지진과 태풍, 교통사고 등 다른 재난훈련까지 포함돼 두 시간가량 걸린다. 하루에 4회 교육이 이뤄지며 평일에는 회당 60명, 주말에는 회당 30명이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전국의 70여 개 소방안전체험관과 민방위체험훈련장, 종합훈련체험장 등에서도 완강기를 체험할 수 있다.

민세홍 가천대 설비·소방공학과 교수는 “위급할 때 안전하게 탈출하려면 미리 완강기를 타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민방위 훈련에 완강기 체험 훈련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천안=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완강기#고층건물#대피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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