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火 키우는 시한폭탄 33만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2일 03시 00분


의정부 아파트 불 4명 사망 126명 부상
서민주택 도입때 안전규제 확 풀어… 스프링클러 없고 동간 거리 1.5m
화재에 취약, 작은 불 번져 참사로

1층 주차장 불, 옆건물로 순식간에 옮겨붙어 10일 경기 의정부시 대봉그린아파트(오른쪽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가 인근 건물까지 번지며 유독가스를 내뿜고 있다. 1층 주차장에서 시작된 화재는 11일 현재 사상자 130명의 참사로 
커졌다. 의정부=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층 주차장 불, 옆건물로 순식간에 옮겨붙어 10일 경기 의정부시 대봉그린아파트(오른쪽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가 인근 건물까지 번지며 유독가스를 내뿜고 있다. 1층 주차장에서 시작된 화재는 11일 현재 사상자 130명의 참사로 커졌다. 의정부=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소화기 한 개면 충분히 끌 수 있었던 경미한 화재가 130명의 사상자를 내는 참사로 이어졌다. 짓는 데에만 신경 쓴 도시형 생활주택의 허술한 소방 안전 관리 체계와 좁은 골목길 불법 주차가 불러온 인재(人災)다.

10일 오전 9시 15분 경기 의정부시 평화로 대봉그린아파트 1층 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가 바로 옆 건물로 번지기까지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사고가 난 도시형 생활주택은 동 사이의 거리가 최소 1.5m에 불과했다. 일반 아파트의 최소 동간 거리(6m)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좁은 건물 간격은 화염이 올라가는 ‘굴뚝’ 역할을 하면서 피해를 키웠다.

정부는 2009년 5월 서민 주거 해결 목적으로 도시형 생활주택을 도입하면서 안전 규제를 대거 풀었다. 동 사이의 거리 축소는 물론이고 건물 안전을 점검하는 관리사무소를 설치하지 않아도 됐다. 심지어 공사 감리 없이 건축 허가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이렇게 ‘화마(火魔)’에 취약한 도시형 생활주택은 전국에 32만8000채가 지어졌고, 그중 61%가 서울 등 수도권에 몰려 있다.

발화 지점인 대봉그린아파트는 건물 전체에 스프링클러가 1대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김석원 의정부소방서장은 “화재가 난 건물 중 두 곳이 10층 이하라 소방법상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이 아니었다”라고 밝혔다. 92가구가 몰려 사는 공동주택인데도 생명을 지켜 줄 안전장치는 의무가 아니었다.

건물 내에 하나뿐인 계단도 화재를 키웠다. 한 개의 통로에서 소방관들의 진화 작업과 주민 대피가 동시에 이뤄지다 보니 진화와 대피 어느 하나도 쉽지 않았다. 오히려 계단을 통해 유독가스가 건물 위로 빠르게 퍼져 인명 피해가 커졌다.

국민 안전 의식도 세월호 참사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본보 취재 결과 일부 주민은 “화재경보기가 평소 고장 나 있는 경우가 많아 경보음이 울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건물 앞 불법 주차 때문에 소방차는 견인차를 앞세우고 차량을 끌어낸 뒤에야 현장에 접근할 수 있었다.

11일 오후 11시 현재 안현순(68·여), 이광혁(43), 윤효정(29·여), 한경진 씨(27·여) 등 4명이 사망했고 126명이 부상했다. 전신 화상 등 중상자가 11명이어서 추가 사망자가 나올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재민은 296명이 발생했다.

의정부=강홍구 windup@donga.com·김재형 / 홍수영 기자
#의정부#아파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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