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동서남북]기업이 만든 지역명물 ‘걷기축제’… 그냥 멈추게 둘건가

  • 동아일보

이기진·사회부
이기진·사회부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시는 인구 3만 명의 작은 호반 도시다. 보덴제 호수를 사이로 독일, 스위스와 맞닿아 있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전화(戰禍)를 피할 수 없었다. 시민들은 전쟁 피로와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 1946년부터 호수에 바지선 2척으로 무대를 만들고 모차르트 작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젠 매년 여름 브레겐츠 인구의 10배 이상 관광객이 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찾는다. 축제로 쇠퇴한 도시가 재생된 곳은 이곳뿐만 아니다.

밤이면 스산했던 영국 에든버러, 조선업 침체로 실직자가 양산된 덴마크 프레데릭스하운, 면화 무역 쇠퇴로 스러져가던 미국 텍사스 주 항구도시 갤버스턴이 모두 특성 있는 축제로 부활했다. 국내에서는 강원 화천군이 산천어, 경남 진주시가 유등(流燈) 하나로 빛을 봤다.

대전에도 그럴 가능성이 있는 축제가 하나 있다. 계족산 황톳길에서 매년 5월 열리던 맨발축제. 한 민간기업에서 시작한 이 축제는 황톳길을 맨발로 걷거나 달리는 지구촌 이색축제로, 지난해에는 외국인 2000명을 비롯해 전국에서 3만여 명이 몰려 열광했다.

주말과 휴일이면 숲 속 음악회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려 한국관광공사에서 뽑은 ‘한국 관광 100선’, 여행전문기자들이 뽑은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 33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래서 주변 식당과 숙박업소, 주유소 등은 환호성을 지른다. 인근 한 식당은 주말에는 매출이 배 이상 오른다고 한다. 오죽하면 식당 안에 ‘우리는 ○○○(민간기업) 때문에 먹고 삽니다’라고 써 놓았을까?

하지만 올해에는 축제가 열리지 않는다.

관광객 수에 비해 주차 공간, 화장실, 음식점 등 편의시설이 크게 부족해 오히려 이 기업에 불만을 갖는다는 것이다. 기업 측은 “민간기업이 모두 책임지고 추진하기엔 한계를 느낀다”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성공한 축제를 유심히 지켜보면 민관 합동이 기본이다. 관에서 주도했다 하더라도 민간에 위탁하거나, 민간이 시작한 축제 역시 관에서 지원하는 추세로 전개되고 있다. 맨발축제는 중부권에선 처음으로 민간이 주도한 대규모 축제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관이 나서 도시 브랜드를 높이고 지역을 살리는 대표 축제로 거듭나게 해주길 기대해본다.

이기진·사회부 doyoce@donga.com
#계족산 황톳길#맨발축제#민간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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