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만명 정보 빼낸 20대 해커 일당은 ‘철부지 향락族’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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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호화 해외여행… 대저택 해킹타운 구상도

경찰이 국내 225개 주요 웹사이트를 해킹해 회원 1700만 명의 개인정보를 빼돌려 3억6000만 원을 챙긴 혐의로 지난달 26일 적발한 20대 해커 일당은 1억 원대 외제차를 몰고 서울 강남의 유흥주점을 출입하는 등 방탕한 생활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올 12월까지 30억 원 이상을 벌어 대저택을 국내외에 구입한 뒤 해커들을 모아 크게 한 탕을 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던 것으로 밝혀졌다.

인천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주범인 해커 김모 씨(21)와 최모 씨(21)는 지난해 9월부터 본격적으로 해킹을 시작해 검은돈을 벌어들였다. 이들은 해킹으로 빼돌린 개인정보를 팔아 번 돈(약 1억 원)보다는 100개가 넘는 도박사이트를 해킹해 승부를 조작하거나 운영자를 협박하면 더 큰 돈을 안정적으로 챙길 수 있음을 악용했다.

경찰이 이들에게서 압수한 영업장부를 보면 1월 25∼27일에만 도박사이트에서 1699만 원을 챙겼다. 하루 평균 500만 원이 넘는 돈을 번 셈. 경찰은 “이들은 ‘더 많은 도박사이트를 해킹해 30억 원 이상을 모아 필리핀이나 국내에 방이 여러 개가 딸린 대저택을 구입한 뒤 해커들을 늘려 큰 판을 벌일 계획이었다’고 털어 놓았다”고 말했다.

하루에 10여 시간을 인터넷 게임을 하다가 1, 2시간만 홈페이지와 도박사이트를 해킹해 돈을 챙긴 이들은 방탕한 생활을 즐긴 것으로 드러났다. 고급 BMW 승용차를 빌려 친구들과 함께 서울 강남 등의 고급 유흥주점을 드나들었다. 저녁식사로 한 끼에 1인당 10만 원이 넘는 음식을 즐겼다.

이들은 또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고급 휴양지인 필리핀 클라크과 앙헬레스 등으로 친구들과 함께 4차례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여행경비는 모두 이들이 냈으며 현지에서 술집 등 유흥가를 휩쓸고 다녀 업주들에게 ‘황태자’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10달러짜리 식사를 한 뒤 여종업원에게 100달러를 팁으로 주기도 했다. 숙소는 주로 400만 원이 넘는 월세를 내는 고급 빌라를 빌린 뒤 미모의 가사도우미 서너 명을 고용해 한 달 이상 묵기도 했다. 주로 자금 관리를 맡았던 최 씨는 경찰 조사에서 “우리가 클라크에 뜨면 술집 사장들이 앞다퉈 안내할 정도였으며 한 차례 여행에 2000만 원이 넘는 돈을 쓰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친구들까지 범행에 끌어들였다. 대학생과 회사원인 친구들은 해커들의 호화 생활을 보고 ‘같이 일하면 좋은 음식과 술을 마시고 큰돈도 벌 수 있다’는 꼬임에 쉽게 빠져들었다. 유년 시절 미국으로 5년간 유학을 떠났다가 귀국해 국내 대학에 들어간 A 씨(21)는 지난해 10월부터 해킹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컴퓨터 프로그램에 기록하는 작업을 하다가 불구속 입건됐다. 지방 전문대를 졸업한 뒤 지난해 한 중견기업에 월급 200여만 원을 받는 기술직 사원으로 입사한 B 씨(21)도 1월 현금 인출 업무를 맡아 범행에 합류했다가 함께 입건됐다. 대포 통장을 개설하는 데 명의를 빌려준 친구들에게는 용돈을 두둑하게 챙겨줬다.

결국 한탕주의에 물들어 범죄의 늪에 빠진 20대 철부지들의 꿈은 산산조각이 난 채 막을 내렸다. B 씨는 “친구 최 씨가 해외에서 돈을 마음대로 쓰는 것을 보여준 뒤 ‘인터넷에서 신상정보 털어 돈을 버는 것이 무슨 큰 죄가 되겠느냐’고 회유해 별다른 죄의식 없이 범행에 가담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A, B 씨가 처음엔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듯했으나 주범인 친구들이 구속되자 눈물을 흘리며 범행을 후회했다”고 말했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개인정보 유출#해커#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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