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성공비법 각광 ‘그릿(Grit)’이 뭐기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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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삶을 원한다면? 마음의 근력부터 키워라!

“성공할 거라고 예측됐던 사람들에게선 한 가지 공통된 특성이 있었다. 그것은 좋은 지능도 아니었고, 좋은 외모나 육체적인 조건은 더구나 아니었다.”

앤절라 리 덕워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난해 4월 세계적인 지식강연인 ‘테드(TED)’에 연사로 참여해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다 27세에 뉴욕시의 공립학교로 옮겨 수학을 가르친 경험이 있었다. 시험 문제와 숙제를 내 보니 성적이 좋은 학생과 나쁜 학생의 차이점은 단지 지능지수(IQ)가 아니었다. 우수한 학생 중 일부는 IQ가 그리 높지 않았고, IQ가 높은 학생 모두가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인생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재능보다 훨씬 더 중요한 다른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이런 의문을 품은 그녀는 교직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해 심리학을 공부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어린이들과 성인들을 연구하며 끊임없이 질문했다. 성공한 사람의 비결은 과연 뭘까.

미국 육군사관학교에 가서 어떤 사관생도가 군사훈련을 끝까지 받거나 중도에 그만두는지, 전국맞춤법대회에 가서 어떤 학생이 끝까지 경쟁에서 살아남는지를 지켜봤다. 문제 학교에 가서는 배정된 초임 교사들 중 누가 학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교사로 남아서 효율적인 방법으로 아이들의 학습 성과를 이끌어 내는지를 연구했다. 몇몇 회사와 제휴를 맺기도 했다. 어떤 세일즈맨이 끝까지 살아남고 판매 성과가 가장 좋은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미국 방방곡곡을 다닌 뒤, 성공할 거라고 예상되는 사람의 특징에 대한 그녀의 결론은 이랬다. “그것은 바로 기개(Grit·그릿)다!”

성공의 원동력은 기개

어떻게 해야 기개를 키울 수 있을까. 덕워스 교수는 “나도 모른다”고 말했다. 기개를 기르는 방법에 대해 정해진 답은 없지만, 여러 가지 연구를 통해 효과적인 방법은 제시되고 있다. 가령 미국 스탠퍼드대 캐럴 드웩 박사의 연구에선 ‘학습능력은 타고나거나 고정된 게 아니고, 노력에 의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기개를 키운다는 점이 발견됐다.

김주환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의 딸이 그랬다. 김 교수는 딸 선유(가명·20) 씨의 기개를 키워 준 경험을 바탕으로 ‘그릿’이라는 책을 펴냈다. 기개나 용기 등으로 번역되는 그릿은 자신이 세운 목표를 위해 꾸준히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이를 ‘마음의 근력’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책에서 그릿의 본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원어 발음 그릿을 그대로 사용했다.

선유 씨는 고 3때 하루에 13∼14시간씩 집중해서 공부했고, 서울대 경영학과 수시전형에 합격했다. 수능에서는 언어 수리 외국어를 포함해 5과목에서 만점을 받았고, 500점 만점에 495점을 기록했다. 성적만 놓고 보면 어릴 때부터 우등생으로만 컸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김 교수의 딸은 어릴 때 영재교육을 받기는커녕 선행학습도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일본 만화책에 빠져 지냈고, 6학년 때는 생뚱맞게 일본어 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공부가 싫다며 하지 않아서 주요 과목별 성적이 288명 중 230등까지 떨어졌다.

이랬던 딸이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릿 때문이다. 김 교수가 말하는 그릿은 자기가 하고자 마음먹은 일을 즐겁게,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이다. 그는 딸이 공부하기 싫다고 말할 때 공부를 하라고 몰아붙이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이 사는 데에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가 하려고 마음먹은 일을 즐겁게,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다. 일류대를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공부든 검도든 게임이든 네가 하고자 마음먹은 계획을 목표로 삼고,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쭉 밀고 나가는 힘을 길러라.”

자율성이 기개의 원동력

김 교수는 “무언가에 집중하고 재미를 느끼는 데에 원동력이 되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게 자율성”이라고 말한다. 자기가 원해서 일을 할 때 열심히 할 수 있고, 재밌게 할 수 있으면 결국 잘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제3자가 뭔가를 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그 대상에 빠져들게 된다. 다른 사람이 시켜서 하는 일은 재미도 없고 성과도 안 나는 법이다.

포스텍(포항공대) 1학년에 재학 중인 이영익 씨(20)도 철저하게 자율적으로 공부해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종종 새벽 5시까지 밤샘 게임에 몰두하곤 했다. 부모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이 씨가 타당한 이유를 대면 부모는 그가 하고 싶은 것을 항상 지지해 줬다. 그는 “초등학교 때 게임에 질려 버려 중학교 때부터는 더 빠져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모는 공부하란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 씨는 중학교 때 몇 달간 학원 문턱에 발을 들여놓기도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뒀다. 개념을 주입식으로 외우는 것이 체질에 맞지 않았고, 기계처럼 공부하면서 산더미 같은 숙제를 처리하는 것도 싫었다.

고등학교 땐 담임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한 뒤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았다. 자기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서 쉴 땐 쉬면서 공부하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그는 늘 시험 전에 몇 과목을 언제 끝낼 건지, 복습을 언제 할 것인지, 문제집을 몇 권 풀 것인지를 스스로 계획했다.

이 씨는 다양한 방법을 주도적으로 찾아서 공부했다. 예를 들어 사회 현상을 배우면 교과서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각종 자료를 찾으면서 공부했다. 그게 더 재미있어서다. 그는 “아버지는 항상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흥미를 느끼는 걸 하라고 얘기했다”면서 “재밌는 걸 찾아서 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공부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운동으로 마음의 근력 키우기

그릿을 키우는 또 다른 방법은 운동이다. 김 교수는 딸에게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시켰다. 선유 씨는 고교 시절 방학 때는 거의 매일, 학기 중에는 주 2회 정도 검도장에 다녔고 매일 밤 명상을 했다. 김 교수는 “땀을 흘리는 유산소 운동을 하면 학습능력이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면서 “아울러 명상은 스트레스를 낮추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어릴 때 운동을 열심히 했던 사람이 공부도 꾸준히 잘하는 사례는 많다. 제주시 출신인 변경희 가천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38·여)는 초·중학교 때 육상부에서 활동했고 도 대표로 소년체전에도 출전했다. 100m 달리기에서 두각을 나타내 운동선수를 꿈꾸기도 했다. 운동을 하느라 중학교 때는 수업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고 시험도 종종 빠졌다.

고교에 진학할 때 추첨을 통해 운동부가 없는 학교에 배정되면서 진로가 바뀌었다. 고교에 입학해 1학년 때는 성적이 하위권에 머물렀을 정도로 나빴다. 초등학교 때 주산학원에 다닌 것 외에는 학원을 가 본 적이 없었고, 당연히 고교 수업에 필요한 기본 지식도 없었다.

그는 학교와 독서실, 도서관을 오가며 오전 1∼2시에 집에 들어오고 오전 5시 반∼6시에 등교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고교 2학년 때는 방학 내내 혼자 절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몰두하면서 성적이 서서히 올랐다. 변 교수는 제주대에서 화학과와 의대를 졸업하고 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뒤 가천대의 이길여 암·당뇨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다.

변 교수는 자신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공부할 수 있었던 동력은 운동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운동을 하면서 끈기와 인내, 승부욕을 길렀는데 이런 근성은 공부에도 도움이 됐다”면서 “어려운 수학 문제에 부닥치면 인내심을 갖고 꼭 풀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변 교수는 지난해 동료 교수들과 암의 진행 단계는 물론이고 예후까지 판별할 수 있는 진단법을 개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던 동력도 운동이었다. 지금도 매일 오전 7시 반에 출근해 오후 9∼10시에 퇴근하고 있지만, 지치지 않고 연구하고 있다. 그는 “성실함을 뛰어넘는 것은 없다”면서 “실험실 연구원들도 인내와 끈기, 성취욕을 갖고 노력하는 사람이 좋은 논문을 내더라”고 말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능력은 발전한다는 믿음

그릿은 때론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마음의 근력이다. 사람의 지능이나 능력은 고정돼 있지 않으며,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밑바탕이 된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렇게 ‘능력 발전 믿음’을 가진 사람은 실패를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무언가가 안 되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면서 끊임없이 다시 도전한다.

서울대 화학과에 재학 중인 강순영 씨(21·여)도 고교 시절 좌절감을 느낀 적이 있지만 능력은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공부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는 한국과학영재학교에 입학해 1학년 때 치른 첫 시험에서 최하위권 점수를 받았다. 당시 그 고교에서는 대학처럼 학점제로 환산해 점수를 매겼는데 4.3 만점에 2.5점을 받았다.

처음엔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금세 이겨냈다. 강 씨는 “내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이렇게 된 거였다. 내가 잘못해서 나온 결과는 아니니 계속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충분히 노력했지만 아직 성과가 나오지 않은 것일 뿐이니, 자책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노력으로 결과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강 씨는 “중학교 때 경험을 떠올려 보니 열심히 하면 성적이 오르더라. 고교 때도 열심히 하면 잘될 거라고 믿고 공부했다”고 회상했다. 꾸준히 노력해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거둔 이유다.

결과에 울고 웃는 게 아니라 목표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을 중시해야 그릿이 자란다. 김 교수도 자녀들에게 “삶을 시험 성적이나 등수로 평가하지 말고, 내가 세운 계획을 얼마나 완수했는지로만 평가하라”고 말해 왔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아야 마음의 근력이 자라나고 열정과 집념이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덕워스 교수는 “기개란 목표를 향해 오래 나아갈 수 있는 열정과 끈기”라고 강조한다. “해가 뜨나 해가 지나 꿈과 미래를 물고 늘어지는 거예요. 일주일, 한 달이 아니라 몇 년에 걸쳐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겁니다. 삶을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처럼 사는 겁니다.”

:: 그릿(Grit) ::

사전적으로는 기개, 투지, 용기 등으로 번역된다. 때론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오랫동안 꾸준히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박병현 인턴기자 한양대 영어교육과 4학년
#그릿#김주환#변경희#앤젤라 리 덕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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