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환자들 돌보다가 신장 나눈 임상병리사

  • 동아일보

■ 박현미씨 앞 못보는 만성신부전증 환자에게 새 삶

신장 기증을 위해 21일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박현미 씨(가운데). 남편 양치원 씨(왼쪽)와 딸 수정 양이 병원 앞 정원에서 손으로 함께 하트 모양을 그리며 박 씨를 응원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신장 기증을 위해 21일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박현미 씨(가운데). 남편 양치원 씨(왼쪽)와 딸 수정 양이 병원 앞 정원에서 손으로 함께 하트 모양을 그리며 박 씨를 응원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선천성 1급 시각장애를 가진 데다 만성신부전증을 앓아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투석을 받아야 했던 김철원 씨(54·전남 진도군)는 6월 말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로부터 기적과 같은 소식을 들었다. 부산 동래구에 사는 임상병리사 박현미 씨(46·여)가 한쪽 신장을 자신에게 기증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박 씨는 5년 전 신장 기증 결심을 굳혔다고 했다. 25년간 환자들을 곁에서 돌봐온 박 씨는 신부전증의 고통을 생생히 알고 있었다. 신부전증 환자는 신장 기능 손상으로 소변을 통해 노폐물을 걸러내지 못한다. 투석을 제때 받지 못하면 피부가 검게 변하고 퉁퉁 붓는다. 박 씨는 “그들은 투석을 견뎌내며 ‘소변을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우리의 일상이 그들에겐 절실한 소망”이라고 말했다.

박 씨가 만났던 한 신부전증 환자는 고통스러운 투석을 받으면서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못해 죄스럽다”며 눈물을 흘렸다. 평소 골수나 각막 기증 소식을 접하며 장기 기증에 관심을 두던 박 씨는 이를 계기로 2009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신장 기증 등록을 했다. 박 씨는 당시 학생이던 세 딸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바로 수술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올해 큰딸이 성인이 되면서 ‘더 늦기 전에 기증을 실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남편과 세 딸은 이식 수술을 하겠다는 박 씨의 결단에 긴급 가족회의를 열었지만 결국 박 씨를 진심으로 응원하기로 했다. 본부의 방침에 따라 박 씨는 김 씨를 직접 만나볼 수는 없었지만 그의 사연을 전해 듣고 “수술을 앞두고 조금씩 무서워졌는데 이젠 용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인 김 씨에겐 신장투석을 받으려 일주일에 세 번씩 목포 시내 병원을 찾아가는 것은 크나큰 고통이었다. 시각장애인 활동보조도우미는 김 씨를 고속버스가 닿는 읍내까지만 데려다줬다. 버스를 타고 목포터미널에 혼자 도착한 이후부터는 사람들에게 부딪히고 떠밀렸다. 4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 투석을 하고 집에 오면 하루해가 저물고 김 씨의 몸에는 긁힌 상처가 늘었다. 삶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문득 문득 들었지만 뇌성마비 2급 장애를 가진 부인과 아들딸들이 가장인 김 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술은 22일 오전 서울아산병원에서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박 씨와 김 씨는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인 상태다. 신장 이식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한쪽 신장으로도 일상생활에 전혀 무리가 없다. 박 씨는 “앞 못 보는 분이 제 신장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남들보다 더 힘든 분인 만큼 앞으로 조금이나마 더 용기를 갖고 살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곽도영·김성모 기자 now@donga.com
#장기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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