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 노량진 배수지 상수도관 부설공사 현장에서 15일 인부 1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된 참사는 서울시의 구멍 뚫린 재난 대응 체계와 시공사의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인재(人災)’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 공사장 존재도 모르고 수문 연 한강홍수통제소
한강홍수통제소는 15일 한강수력본부로부터 “팔당댐 수위가 한계에 달해 수문을 열어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방류를 승인했다. 이때까지 통제소는 한강 유역에서 상수도관 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통제소 관계자는 “한강의 공사 현장이나 시설물에 대한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방류 예고는 통제소 홈페이지에 제일 먼저 게시된다. 동시에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와 서울지방경찰청, 인근 군부대 담당자에게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나 팩스로 전달된다. 하지만 공사업체 등 민간에는 따로 통보되지 않는다. 15일 참사가 일어난 공사 현장에 미리 위험을 경고해 줄 수 있는 건 서울시뿐이었다.
○ 위험 상황 알고도 손놓은 서울시
공사 발주처인 서울시는 사고 약 8시간 반 전인 15일 오전 9시에 한 차례 시공사인 천호건설 측 감리회계 담당자에게 “한강 수위가 높아질 수 있으니 안전 관리를 해달라”고 알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팔당댐의 방수량은 초당 7000∼7500t으로 많지 않았다. 낮 12시 반경 방류량이 초당 최고 1만6000t까지 치솟으며 상황이 돌변했다. 수위가 무섭게 올라갔다. 한강홍수통제소의 기록을 확인한 결과 15일 오전 1시 반부터 오후 11시 반까지 모두 14차례에 걸쳐 통제소는 서울시에 문자와 팩스로 방류량의 증가를 알렸다. 서울시는 오후 들어 댐 방류량이 급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시공사 측에 알리지 않았다. 오히려 안전 점검 결과 이상 없다는 시공사 측의 전화 한 통만 받고 공사를 승인했다.
시공사 측은 직원이 한강홍수통제소 홈페이지에 접속해 자체적으로 수위를 관찰했다고 밝혔다. 서울시 측은 “감리회사가 감독해야지 우리가 일일이 지시할 권한은 없다”고 해명했다. ○ 위기 상황 무시하고 공사 강행한 시공사
시공사인 천호건설 박종휘 현장소장은 폭우에도 공사를 강행한 이유에 대해 “오전까지만 해도 서울에 비 소식이 없었고 팔당댐 방류량도 줄어들어서 그랬다”고 16일 말했다.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낮 12시 반경 팔당댐 방류량이 오전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늘어난 것을 눈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자체 안전 매뉴얼에 따르면 한강 수위가 높아지거나 팔당댐 수위가 변할 경우 공사를 즉시 중단하고 인력을 대피시켜야 했지만 사고 당일에는 지켜지지 않았다.
약 3시간 40분이 지난 오후 4시 10분이 돼서야 한 직원이 도달기지 입구까지 강물이 차오른 것을 목격했다. 박 현장소장은 “오후 4시 13분 이 광경을 찍은 사진을 카카오톡으로 전송받고 공사팀장에게 작업 중단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공사팀장은 “하청업체인 동아지질 측에 작업 중단을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동아지질 측은 “철수하라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한 현장 관계자는 “그 시점부터 약 1시간 동안 지하터널에 연락이 제대로 취해지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하터널에 있던 인부들은 사고가 발생한 오후 5시 29분까지 1시간이 넘게 한강 범람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지하터널에는 지상과의 유일한 연락수단인 비상 인터폰이 일정 거리마다 설치돼 있었다. 수몰 현장에서 살아나온 이원익 씨는 “사건 당시 (비상) 인터폰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이 씨는 “죽을힘을 다해 달려서 터널을 빠져나왔다”며 “앞서 달리던 (사망자) 조용호 씨가 피투성이가 된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
사고 하루가 지난 16일 동작구 흑석동 도달기지 입구에는 강물이나 빗물 유입을 막을 수중 콘크리트 벽이 설치됐다. 잠수부까지 투입해 실종자 수색작업을 했으나 실패했다.
한편 15일 수몰 현장에서는 당초 7명이 작업을 하다 1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16일 “사고 당시 지하터널 안에서 17명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시공사 측 현장소장의 증언이 새로 나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