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 한국인 범죄피해 급증, 외교부 “대책 마련”… 돌아서선 “언론이 침소봉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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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 소극적 대응 일관… 교민들 “濠에 공식 항의를”

2009년 5월 중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 뉴캐슬대에 다니던 조모 씨(26)는 오후 10시 반경 도서관에서 나와 집으로 가던 오솔길에서 1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백인 남성 5명에게 20cm 정도의 칼로 위협을 받았다. 다행히 이들을 뿌리치고 재빨리 도서관으로 도망쳤다. 교내 보안요원은 “이틀 전 중국인 학생도 강도를 당했고, 요즘 교내에도 동양인 상대 범죄가 많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경찰서에 가서 피해 사실을 진술하고 돌아오니 오전 3시. 추가 피해를 막고 사건을 정확하게 처리해 주리란 기대감을 안고 영사관 24시간 긴급전화 다이얼을 눌렀다. 다행히 누군가가 받았다. “한국 ○○대에서 온 교환학생인데 현지인에게 칼로 위협을 당했어요.” 하지만 당직자는 짜증스러운 목소리였다. “그런 일로 이 시간에 전화를 하시면 어떡합니까. 다친 것도 아니고 피해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훈계도 이어졌다. “나도 ○○대 나온 당신 선배인데, 이런 일로 전화하면 한도 끝도 없어요….”

해외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 범죄에 대응하는 외교통상부의 태도는 언제나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외교부는 3일 “우리 국민의 안전을 위해 호주 당국에 협조를 강력히 요청한 것을 비롯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고위 당국자는 “호주 정부가 유학생과 관광객 감소 등 부정적 여파를 고려해 최근 사건들에 많은 신경을 쓰는 분위기”라며 “정부도 현지 대사관 등을 통해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이렇게 얘기하면서도 외교부 당국자들의 속내는 ‘별 문제 없는데 언론이 침소봉대해서 외교 문제를 만들고 있다’라는 식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호주에서 유학생 등 한국인을 상대로 한 범죄가 최근 석 달간 6건이나 연달아 발생했고 그 가운데는 인종차별 범죄로 여겨지는 범죄들도 포함돼 있다는 동아일보 현지 취재 보도가 나간 3일 오전 외교부 실국장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현지 분위기와 많이 다른 사실과 기사가 나가고 있다는 식의 얘기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 당국자는 동아일보 출입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현장 분위기와 많이 다르다. 기사가 1면에 나와서 너무 심각한 문제인 것처럼 비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호주 교민 김모 씨(38)는 “외교부가 엄정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하지만 전혀 달라지는 것을 느끼지 못하겠다”라며 “호주는 공문서에 더 신경 쓰기 때문에 공식 항의서한을 보내는 방식으로 강하게 대처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해외에서 한국인이 범죄 피해를 본 건수는 2009년 3517건에서 2010년 3716건, 지난해 4458건으로 늘고 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한국인#범죄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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