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평검사회의 ‘수뇌부 퇴진’ 갑론을박… 性검사 영장은 기각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7일 03시 00분


뇌물검사 등 현직 관련 회의는 처음… 검사장회의도 잇따라
性검사 ‘집무실 성관계’ 시인… 법원 “뇌물죄 성립여부 의문”

뇌물검사에 이은 성검사 파문, 주요 사건 수사 및 구형량 결정 과정에서 검찰 상층부의 영향력 행사 의혹 등 논란이 계속되자 전국 지검 곳곳에서 평검사회의가 열리는 등 검찰이 심각한 내홍을 앓고 있다.

수원지검 성남지청 평검사 22명은 26일 오전부터 소회의실에서 4시간가량 회의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폐지해야 하는지, 검찰의 기소권과 수사권을 축소해야 하는지, 또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가 퇴진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대구지검에서는 수석검사 회의가 열렸으며 수원지검 소속 평검사들은 이날 일과 시간 후 저녁시간대에 회의를 했다. 서울북부지검에서도 이날 저녁 평검사회의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업무 관계로 연기됐다.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에서는 28일경 전체 평검사회의를 개최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서부지검도 28일 업무가 끝난 뒤 평검사 전체회의를 열기로 하는 등 전국 18개 일선 지검 대부분에서 평검사회의가 개최될 것으로 보인다.

평검사회의는 부부장급 이상 간부를 배제하고 평검사들이 현안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밝히는 회의체다. 서울중앙지검 등에서는 수석검사들의 동의로 이 회의를 여는 방식으로 관련 준칙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평검사회의가 열린 것은 지난해 6월 검경 수사권 조정 논란 이후 1년 5개월 만이다. 2003년 2월 참여정부 출범 전 검찰개혁 논의 때와 2005년 5월 국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형사소송법 개정 초안을 발표했을 때도 열렸지만 현직 검사의 비리와 관련한 회의는 이번이 처음이다.

현 위기에 대한 검사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감찰 실패, 편파 수사 등으로 신뢰를 잃은 수뇌부가 개혁안을 추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과 ‘자체개혁안으로 중심을 잡고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26일 오후 6시부터 대구 부산 울산 광주 전주 제주 등 6개 지검의 지검장을 불러 자체적인 검찰개혁안 등을 논의했다. 이날 검사장 회의에서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와 상설특검제도 도입,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기소대배심제 도입 등이 논의됐다. 한 총장은 15일 수도권 지검장 회의를 시작으로 22일 고검장급 회의를 열었고 29일 한 차례 더 지검장 회의를 열 예정이다. 한 총장은 이렇게 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검찰개혁안을 만들어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다.

검찰이 22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해 징역 4년을 구형한 과정에서 검찰 수뇌부가 개입했는지를 놓고도 엇갈린 주장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의혹을 제기하는 측의 핵심 주장은 “수사팀 의견과 달리 검찰 수뇌부의 뜻대로 구형을 낮춘 것 아니냐”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수사팀이 30여 차례 계속된 공판에서 보인 태도를 감안할 때 양형 기준 최고 형량인 8년 이상을 구형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수뇌부의 압력’ 의혹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26일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그는 “구형에 대해 부장(검사)과 (평)검사도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은 견해차가 아니라 의견 형성 과정”이라며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일선 검사들의 수사 및 구형 과정에서 검찰 상층부가 어느 정도까지 개입하는 게 적정한지를 놓고 당분간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에선 이 문제를 뇌물 검사 사건이나 검사의 성추문 사건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앞의 두 사건은 ‘돌발적인 사건’으로 볼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수사 방식 및 결론을 내리는 시스템과 관련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일부 검사 사이에서는 검찰 지휘부가 대검 중수부 폐지 문제 등을 들고 나온 데 대해 “소통 부족이라는 내부의 문제를 가리는 본질 흐리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내곡동 사저 의혹 수사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인 시형 씨에 대한 소환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던 점 등에 대한 불만, 평소 일선 검사들이 수사 과정에서 상층부와 충돌하면서 쌓였던 좌절감 등이 한꺼번에 터지는 양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판사 개개인이 독립적인 헌법 기관인 법원과 다른 검찰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수사 및 구형 과정에서 상하 간 보고 및 의견 조율은 필수적이라는 의견도 있어 논란의 결말이 주목된다.

한편 서울중앙지법 위현석 영장전담부장판사는 26일 수사하던 피의자와 성관계를 맺은 혐의(뇌물수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전모 검사에 대한 영장실질심사 결과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위 판사는 “윤리적 비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뇌물죄의 범죄 성립 여부에 의문이 있고 두 당사자 대화 내용이 녹음돼 있어 증거인멸 우려도 없다”고 밝혔다. 전 검사는 “검사실에서는 유사성행위만 했다”고 주장했으나 이날 실질심사에서는 “검사실에서도 성관계를 맺었지만 수사와 관련한 대가성은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성검사 파문의 책임을 지고 석동현 서울동부지검장(52·사법연수원 15기)이 26일 퇴임함에 따라 한명관 대검 형사부장(53·사법연수원 15기)이 직무대리로 임명됐다. 대검 형사부장은 이건리 대검 공판송무부장(49·사법연수원 16기)이 겸임하게 된다.

최창봉·전지성 기자 ceric@donga.com
#성검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