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해요 나눔예술]“아이들, 합주 익히며 화합을 깨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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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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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자람교실 음악교사 김헌경 씨

행복자람교실 김헌경 씨가 24일 서울 서대문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3층 교육장에서
아이들의 연주를 지도하고 있다. 그는 12월 아이들의 첫 공식무대가 될 행복자람교실
창단연주회에서 지휘할 예정이다. 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행복자람교실 김헌경 씨가 24일 서울 서대문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3층 교육장에서 아이들의 연주를 지도하고 있다. 그는 12월 아이들의 첫 공식무대가 될 행복자람교실 창단연주회에서 지휘할 예정이다. 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고등학교 때 밴드부에서 활동한 게 계기가 돼 음대에 진학했고 유명 연주자의 꿈을 키웠다. 30대에 접어들어서는 지휘자가 되고 싶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랬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 이제는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됐다. 연주자에서 지휘자의 꿈을 키웠던 한 음악인은 이제 새싹 같은 아이들의 꿈을 보듬는 데 인생을 걸고 있다. 이 사연의 주인공은 김헌경 씨(64)다.

매주 수요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행복자람교실(www.nanumart.com) 합주반. 우렁찬 목소리로 아이들을 이끄는 김 씨를 어김없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현악기를 가르치는 교사 8명 중 가장 연장자로 합주를 담당해 12월 1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행복자람교실 창단연주회를 지휘한다.

“아이들 실력이 볼 때마다 늘어요. 저도 깜짝 놀라요. 한여름 쑥쑥 자라는 오이 같다고 할까요. 허허.”

아이들을 가르친 지 두 달 남짓 된 24일 그가 한 말이다. 그의 두 팔에 시선을 집중하는 아이들의 불협화음은 어느덧 화음으로 바뀌었다. 짧은 마디가 끝날 때마다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완성된 상태에서의 칭찬보다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하는 격려가 아이들의 용기를 북돋아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김 씨가 아이들과 함께하는 음악인의 삶을 살기로 마음먹은 것은 30대 중반의 미국 유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초 지휘자가 되려고 떠난 길이었지만 우연히 보게 된 한 마을의 학교 연주회가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연주야 보잘것없었지만 아이와 부모 교사 모두가 함께하는 마을 축제인 거예요. 우리 풍토는 무조건 1등을 해야 하잖아요. 못해도 과정을 밟아가면서 즐기는 걸 보고 ‘아, 교육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아이들의 인성이 음악교육을 통해 바르게 키워질 것으로 확신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지방자치단체 등에 자신의 뜻을 알리면서 음악인인 아내 임은희 씨(57·첼로)와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나갔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여러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보듬었다. 그렇게 십수 년. 부모의 이혼으로 모난 성격이 되어버린 아이는 음악을 접하면서 소아암까지 이겨내고 어엿한 대학생이 됐다. 중학생이 돼서도 엄마 치맛자락만 잡고 맴돌던 여자아이는 자신감을 키워 음악전공자로 자랐다.

“클래식은 음표가 수직과 수평으로 만나는 질서정연한 음악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음악 속에서 사는 아이들은 심성이 좋아져요. 자신감이 생기는 건 물론이고요. 고운 심성과 자신감, 이게 바로 제가 목표로 하는 겁니다.”

이는 행복자람교실 아이들에게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스스로 자기 악기와 물건을 정리하는 사소한 것부터 가족과 또래 친구를 즐거운 마음으로 대하며 자신감이 쌓여가는 모습까지. 이를 지켜보는 엄마들은 아이들의 변화가 대견스럽다.

엄마가 캐나다 출신인 현균(8)이 베트남 다문화가정의 성민(15)과 스스럼없는 친구가 된 것은 행복자람교실 덕분이다. 영어를 잘하는 현균은 뒤늦게 악기교실 가족이 된 맏형 성민의 영어 통역을 도우며 악기 연주에 더욱 재미를 붙였고 외톨이 성민의 자신감은 부쩍 커졌다.

‘오늘은 어떤 변화가 있을까.’ 악기교실에 오는 날이면 김 씨는 이런 기대감에 설렌다. 아이들 합주 편곡작업을 하느라 잠자는 시간까지 줄였다. ‘행복자람친구’란 제목의 곡도 만들었다. 아내 임 씨는 이런 남편과 이산가족이나 다름 없다면서도 행복한 표정이다.

“바이올린조차 못 들던 꼬맹이가 ‘나비야’를 연주하게 됐으니 얼마나 신기해요. 그래서 12월 연주회에서는 아이들이 처음 활을 잡고 ‘도’를 켤 때부터 동요를 연주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고 싶어요. 설명도 곁들일 거고요. 중요한 건 연주 실력이 아니라 아이들이 이 자리까지 온 것이니까.”

‘무슨 연주회가 이래?’ 관객들이 의아해하더라도 주인공인 아이들의 모습에서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는 즐거운 음악회를 꾸미려 한다. 김 씨는 아이들이 음악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훗날 이런 활동이 생활의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소방관 누구의 바이올린 독주회, 미용사 아무개의 플루트 연주회, 동네 아저씨들의 첼로 발표회’가 열린다면 그런 사회가 더 멋있지 않겠느냐고.

며칠 후 다시 찾은 행복자람교실. 아이들의 합주를 이끄는 김 씨의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렸다. “잘했어. 자, 이번엔 다 같이 해보는 거야. (활을) 위로! 아래로! 하나 둘 셋 넷∼.”

박길명 나눔예술특별기고가 myung@donga.com

#나눔예술#행복자람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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