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호경]제주항공 참사 1주기인데, ‘외양간 수리’도 못 끝낸 국회

  • 동아일보

김호경 뉴스룸기획팀장
김호경 뉴스룸기획팀장
지난해 12월 29일 탑승객 181명 중 179명이 숨진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국내에서 발생한 항공 사고 중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참사였다.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다 돼 가지만 사고 원인과 책임은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도 않았다.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는 이달 초 공청회를 열고 중간조사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유족 반발로 무산됐다. 유족들이 반발한 건 참사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국토부 소속인 사조위의 ‘셀프 조사’는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유족들은 참사 직후부터 독립적인 조사 기구를 요구했다. 사고 약 열흘 만에 사조위를 국무총리실로 이관하는 항공철도사고조사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고, 여야 모두 국토부로부터의 독립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런데 개정안은 거의 1년이 흐른 이달 초에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위원회를 통과했다.

국회 첫 관문 통과에 11개월이나 걸린 건 국토위 논의 과정에서 일부가 ‘다른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사조위 독립 시 조사 업무의 연속성과 전문성이 저하될 수 있고, 기능 중심으로 짜인 정부 조직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며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발언의 행간을 살펴보면 유족의 요구에 떠밀려 국토부 조직을 떼어 내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는 듯했다.

물론 정부 조직 개편은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사조위의 태생적 한계를 뒤늦게나마 바로잡는 일이다. 2002년 사조위 출범 당시부터 관련 법에는 국토부 장관은 조사 업무에 관여하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하지만 인사나 예산 등은 국토부 장관의 지휘를 받는다. 사조위 위원 12명 중 2명인 상임위원은 국토부 고위공무원 몫이다. 항공 정책 당국과 완전히 독립된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나 캐나다 교통안전위원회(TSB)와 비교하면 반쪽짜리 독립에 불과하다.

한국교통연구원은 11년 전 펴낸 연구 보고서에서 국내 사조위 제도에 대해 “국토부에 대한 사고 조사의 객관성이 의심받을 수 있다”며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썼다. 유족 측 표현을 빌리면, 국토부 산하에 사조위를 둔 건 ‘잘못 끼운 단추’였다. 이제라도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전문성 저하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오해를 살 수 있다.

사고 조사에 대한 유족의 불신을 키운 건 국토부와 사조위다. 국토부는 무안공항 ‘콘크리트 둔덕’이 참사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되자 한동안 “법적으론 문제가 없다”며 면피하는 데 급급했다. 사조위는 7월 사고 원인을 조종사의 과실로 결론짓는 것으로 오인할 만한 내용을 공개해 논란만 더 키웠다.

사조위 독립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조사 지연은 불가피하다. 개정안에는 법 시행 즉시 기존 사조위 위원들의 임기를 종료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새 사조위를 꾸리는 데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조위 독립 법안을 처음 발의한 의원은 올해 2월 국회 상임위 첫 회의에서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못 고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며 조속한 법안 처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국회는 아직 외양간 수리조차 끝내지 못했다. 그만큼 진상 규명 시기는 멀어졌다. 유족의 고통도 깊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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