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가해학생 강제전학 필요한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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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서울에서 중고교생 867명이 강제 전학됐다. 학교폭력 가해자들이다. 의무교육인 중학교에서는 전학이 가장 강한 처벌이다.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교육계 일각에서는 강제 전학이 반드시 좋은 조치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폭탄을 돌리듯이 문제아를 다른 학교로 떠넘기는 데 그친다는 말. 서울 중랑구 신현중의 두 학생을 보자. 비슷한 잘못을 저질렀지만 한 명은 강제 전학을 갔고, 한 명은 학교에 남았다. 둘은 어떻게 됐을까. 》
▼ “끝까지 잡은 선생님, 나를 변하게 했어요” ▼

신현중 3학년인 박민현(가명·15) 군. 지난해 11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폭대위)에서 강제 전학 처분을 받을 줄 알았다.

박 군은 1년 동안 친구를 자주 때렸다. 돈도 빼앗았다. 교사에게 대들고 이성 문제까지 일으키는 문제아.

친구들은 박 군을 ‘형’이라고 불렀다. 중학교 2학년 때 외국에서 1년을 지내다 돌아오면서 3학년이 아닌 다시 2학년이 됐다. 인근 학교 3학년들과 어울리는 박 군은 학급에서 무서운 존재였다. 폭대위에서도 불량한 태도를 보였다. 자포자기한 모습이었다. 폭대위 위원들의 의견은 강제 전학으로 모아졌다.

하지만 특별교육 7일이라는 조치에 그쳤다. 김재옥 교장(56·여)의 노력 덕분이었다. 2011년 부임하면서부터 김 교장은 ‘강제 전학 없는 학생지도’를 외쳤다. 폭대위 징계에는 학교가 전혀 간섭할 수 없지만 폭대위가 열릴 때마다 “또 문제를 일으키면 그때는 책임지고 전학을 보내겠다”고 호소했다.

학교는 박 군을 위한 성찰 프로그램을 따로 마련했다. 자신의 다짐, 마음을 다스리는 글을 쓰도록 했다. 담임교사와 생활지도교사, 교감, 교장이 박 군을 차례로 상담했다. 다양한 공개수업으로 박 군처럼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도 수업에 참여시키는 노력이 이어졌다.

박 군은 나아지기 시작했다. 교사에게 대들던 버릇이 조금씩 바뀌었다. 그러다 올 2월 다시 일을 저질렀다. 다른 학교 학생들과 패싸움을 벌였다. 이 문제로 5월 열린 폭대위에서 박 군은 지난해와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자신이 때린 학생과 부모에게 죄송하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고 얘기했다. 박 군의 지난해 담임교사는 “지난해 3월에 처음 봤을 때는 눈빛에서부터 살기가 느껴졌다. 꾸준한 노력으로 이제 75% 이상 변했다”고 말했다.

폭대위는 패싸움이 가정법원으로 송치된 사건임을 감안해 별도의 처벌을 하지 않았다. 이후 박 군은 사소한 다툼도 벌이지 않는다.

무엇이 박 군을 바꿨을까. 최근 직접 만난 박 군이 얘기했다. “나를 전학 보내지 않겠다며 노력하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많은 점을 느꼈다.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변하려고 한다.”
▼ “막상 버려지니 충격… 이젠 나도 자포자기” ▼

서울 중랑구 A중 최준호(가명·15) 군. 2년 전까지만 해도 신현중을 다녔다. 박민현 군과 동급생이라 원래는 3학년이어야 하지만 지금은 한 학년 아래다.

최 군은 교내에서 친구를 때렸다는 이유로 신현중에서 강제 전학 처분을 받았다. 2010년 10월이었다. 교실에서 떠들다가 교사가 혼내자 욕하고 대들었던 일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신현중은 물의를 일으킨 학생을 엄하게만 처리했다.

그는 전에도 학생선도위원회에 불려간 적이 있다. 교내봉사 사회봉사 특별교육. 세 번이나 징계를 받았다. 행동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공부에 관심을 갖기는 더욱 힘들었다.

강제 전학 처분의 충격은 컸다. 스스로도 잘못했다고 생각했지만 학교를 떠나라고 할 줄은 몰랐다. 학교가 자신을 버렸다고 느꼈다.

그래도 주변 환경을 바꾸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주소를 옮겨 서울 송파구 B중으로 갔다. 하지만 일 년 내내 등교하지 않았다. 최 군은 “학교가 집에서 멀고 생소했다. 무엇보다도 선생님들을 믿고 따르면서 학교에 정을 붙이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아홉 달 동안은 아예 집을 나갔다. 돌아다니며 나쁜 짓을 저질렀다. 오토바이를 훔치거나 빈집을 털었다. 특수절도 혐의로 법정에 서기도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한 달 동안 소년분류심사원에 다녀왔다.

최 군은 올해 초 중랑구 A중으로 다시 전학 왔다. 1년 유급해 2학년이 됐다. 한 학기 동안 학교를 다녔지만 2학기부터는 결석을 밥 먹듯 한다. 한 살 어린 학생들과의 생활에 재미를 붙이지 못해서다.

신현중에서 일이 벌어졌을 때 전학 처분을 받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최 군은 “친구들이 있으니까 (집을) 나가진 않았겠죠…”라며 말을 흐렸다. 앞으로는 학교를 다닐까. “언젠가는 나가야죠.”

신현중 3학년 임현우(가명·15) 군은 최 군, 박 군과 모두 친하다. 임 군은 “저지른 잘못은 준호가 덜했던 것 같다. 민현이를 보면서 준호도 전학 가지 않았다면 지금보다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다음 학기부터는 준호도 학교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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