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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아빠가 된 세대 ‘X대디’]<下> 소비와 문화에서도 “나는 나”

입력 2012-09-08 03:00업데이트 2020-11-1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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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패션의 ‘큰손’들… 이거다 싶으면 지갑 활짝 연다
“아빠 됐지만 멋은 포기 못해” 회사원 임원만 씨(34)가 컬러풀한 보타이 신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그는 “아빠가 된 뒤에도 패션은 포기하지 않았다”며 “주변에도 외모에 관심이 많은 X대디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 다섯 살배기 딸을 둔 결혼 7년차 회사원 김상호 씨(39)는 소문난 공연 마니아다. 매달 서너 차례 클래식 연주회, 오페라, 발레, 뮤지컬, 연극을 보러 다닌다. 연초에 한 해의 공연 스케줄을 미리 파악해 둘 정도다. 역시 공연 관람이 취미인 아내와는 부부 중 한 사람이 공연을 보러 가면 다른 사람은 아이를 보는 것으로 합의했다. 김 씨는 “아이와 함께 볼 수 있는 공연을 보러 다니는 부모들도 있던데 나는 내 유일한 취미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김 씨가 대학에 입학한 1992년에는 한국 대중문화 역사상 많은 사건이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해(4월 11일) 첫 라이브 콘서트(8월 16일)를 열었다. 그해 여름(6월 1일∼7월 21일) 방영된 ‘질투’는 56.1%라는 기록적인 시청률로 트렌디 드라마의 새 장을 열었다. 7월 4일 개봉한 ‘결혼이야기’는 신세대 부부의 결혼생활과 성(性)을 솔직하게 다루며 흥행에 성공한 첫 로맨틱 코미디 영화였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대중문화가 폭발적으로 팽창하던 시기였다. 》
‘X대디’들이 대학에 다니거나 사회생활을 시작한 1990년대는 해외 패션 브랜드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시기이기도 하다. 경제적 풍요 속에 신(新)문화와 접하면서 소비 유전자를 갖게 된 X세대는 아빠가 된 뒤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소비 주체로 자리 잡고 있다.

○ 문화 수혜자에서 흥행 큰손으로

‘X대디’는 최근 대중문화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흥행 큰손’으로 꼽힌다. 올해 성공한 한국영화 중에는 30, 40대 남성을 겨냥한 작품이 많았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내 아내의 모든 것’ ‘건축학 개론’ ‘도둑들’ 등이 대표적이다. ‘건축학 개론’과 ‘범죄와의 전쟁’은 1980, 90년대를 배경으로 했고 ‘도둑들’은 홍콩 누아르에 열광했던 30, 40대 남성을 자극했다.

영화 예매 사이트 맥스무비에 따르면 ‘건축학 개론’과 ‘내 아내의 모든 것’은 멜로영화지만 30대 남성의 예매율이 20대 여성보다 높았다. 또 2001년 10% 초반이었던 30대 남성의 영화 예매율은 2006년 22%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20대 남성을 앞섰다. 김형호 맥스무비 실장은 “영화 ‘쉬리’ 이후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경험했던 당시 20대 남성 관객층이 30대가 되면서 영화계의 주요 고객으로 부상했다”고 분석했다.

공연업계도 X대디를 겨냥해 1980, 90년대 인기를 끌었던 록그룹들을 잇달아 초청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아이언 메이든’ ‘슬래시’ ‘미스터빅’ ‘드림시어터’의 공연 관객은 X대디가 절반 이상이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이 공연들을 주관한 액세스 ENT의 문소현 팀장은 “아들과 함께 공연장을 찾는 아빠 팬들이 요즘 공연의 새로운 트렌드”라고 귀띔했다.

○ 1990년대부터 꽃 핀 패션 경쟁

임원만 씨(34)는 평소 보타이에 컬러풀한 양말을 즐긴다. 이름 모를 디자이너가 만든 길거리 패션 아이템도 거리낌 없이 산다. 특히 시계는 개성이 뚜렷한 유명 브랜드 제품을 즐겨 찬다. 임 씨는 “아이 둘이 태어나면서 패션에 쓰는 예산이 싱글 때보다는 줄었지만 내 스타일을 포기하지 않고 할인상품 등 대체재를 찾는다”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김인철 씨(35)는 직장에서 ‘패셔니스타’로 꼽힌다. 지금도 외국 패션잡지를 구독하는 그는 대학 시절엔 헐렁한 면바지에 폴로 티셔츠, ‘닥터 마틴’ 워커 차림을 고수했다. 이런 힙합 패션이 1990년대 ‘강남 스타일’이었다. 김 씨는 “X세대는 학력고사에서 수학능력시험으로, 삐삐에서 휴대전화로,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변화하는 세상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다”며 “캠퍼스에서 벌어지는 패션 경쟁도 새롭게 적응해야 할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1990년대에는 노티카 퀵실버 이스트팩 잔스포츠 마리떼프랑소와저버 폴로 인터크루 등 해외 브랜드가 쏟아져 들어왔다. 아모레퍼시픽이 1993년 X세대를 겨냥해 선보인 ‘트윈엑스’는 남성 화장품의 부흥기를 열었다. 1997년 출시된 소망화장품의 ‘꽃을 든 남자’는 컬러로션 등 남성 화장품 카테고리에서는 생소하게 여겨졌던 아이템들을 내놓으면서 ‘꽃미남’ 트렌드를 몰고 왔다.

○ 소비에 죄책감 없는 세대

X대디의 소비 성향은 수치로도 잘 나타난다. 지난해 광고대행사 이노션 월드와이드가 전국 남성 59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경제적으로 무리가 있더라도 명품 브랜드는 하나 정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30대가 37.2%로 가장 많았다.

트렌드컨설팅업체 PFIN이 3월 서울에 사는 남성 6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내 외모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 신경을 쓰는 편이다’라는 문항에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은 30대가 67%로 가장 높았다.

실제로 롯데백화점이 연령대별 남성 고객 매출 구성비를 분석한 결과도 30대가 34%로 40대(27%), 20대(9%)를 크게 앞섰다. 명품시계와 패션잡화, 구두 등 개성을 뚜렷이 드러낼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은 격차가 더 컸다.

유수진 PFIN 대표는 “‘88만 원 세대’로 불리는 20대가 외모에는 더 신경을 쓰지만 취업 같은 현실적인 문제로 위축돼 있는 반면 X대디가 주축인 30대는 자신의 행복을 위한 소비에 훨씬 관대하다”고 설명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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