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서울 성동구 행당동 성동전당포에서 주인 이재오 씨가 손님이 가져온 반지를 감정하고 있다. 이 씨는 31년째 전당포를 운영해오고 있다. 서울 성동구 제공
일주일 만에 찾아온 손님. 철창 너머로 끼고 있던 반지를 내밀며 “50만 원 정도 빌릴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반지를 받아든 주인 이재오 씨(67)는 한참 이리저리 살피더니 “20만 원 이상은 힘들겠다”고 말했다. 낙담한 손님은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31년째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서 전당포를 운영해 온 이 씨는 “요새 손님 구경하기도 힘들었는데 찾아온 게 어디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23일 오후 서울 지하철 1호선 왕십리역 인근 성동전당포. 평범한 회사를 다니던 이 씨가 31년 전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지인의 말에 차린 전당포다. 당시에는 주변에 30곳이 넘는 전당포가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이 씨의 가게를 포함해 5곳만 남았다. 오랜 세월만큼 낡은 이 씨의 가게. 계단은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고 하얀색 철문과 철창에도 세월의 무게가 남아있다. 철창 아래 가로세로 1m도 안되는 작은 창문 안 쪽에서 이 씨가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속 풍경 그대로다.
“지금이야 파리만 날리지만 옛날엔 엄청났지. 장롱 안에 모셔놨던 금가락지, 진주목걸이 하나씩 들고 온 손님들이 가게 밖으로 줄지어 서서 기다릴 정도였으니까….”
장사가 잘됐을 때는 전당포 수입만으로 세 딸 모두 대학을 보내고 시집까지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한 달 수입이 많아야 100만 원 정도. 신용카드가 확산되고 대형 대부업체가 범람하면서 전당포는 점차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1999년 전당포 영업법이 폐지되면서 업주들의 모임인 전당포영업회도 사라졌다. 2005년 9월부터 전당포 영업은 대부업법 규정에 따라 영업하게 돼 이자율은 연 39%, 월 3.25%를 적용받는다. 이 씨는 “과거 잘나가던 1970, 80년대에는 6개월 대출에 월 6% 이자를 받았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에 등록된 대부업체는 4690개지만 전당포는 별도로 구분되지 않는다.
세상이 바뀌면서 손님이 뜸해졌지만 이 씨는 전당포를 계속할 생각이다. 그는 “여기서 돈을 빌리는 사람들은 큰돈도 아니고 당장 몇십만 원, 몇만 원이 없어서 생계가 곤란한 사람들”이라며 “전당포는 은행이나 대부업체도 외면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작은 희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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