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실버론’ 신청 한달반만에 5000명 돌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18일 03시 00분


만성신부전증 환자인 엄모 씨(64)는 지난달 초 집주인이 전세금 1000만 원을 올려 달라고 하자 고민에 빠졌다. 생활비를 간신히 마련하는 형편이라 돈 구할 길이 막막했다. 부인 역시 거동이 불편한 상태. 엄 씨는 “집도 없고 연대보증인도 없는 노인이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기는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다행히 엄 씨는 ‘국민연금 실버론’을 지난달 15일 신청해 국민연금공단에서 전월세 자금 500만 원을 빌릴 수 있었다. 그는 “남은 방법이 사채밖에 없었는데 저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국민연금공단은 실버론 제도를 도입한 지 한 달 반 만에 엄 씨 같은 노인 신청자 5224명에게 204억6000만 원을 빌려줬다고 17일 밝혔다.

여기에는 대한민국 노년의 슬픈 그림자가 숨어 있다. 당초 공단이 예상한 신청인원은 매년 6000명 규모. 시행 한 달 반 만에 예측 인원이 거의 다 찬 셈이다. 노령연금 수급자인 전모 씨는 “몸이 아프면 목돈이 필요한데 자식에게 손을 벌리기가 쉽지 않다. 노인으로서는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월 20만 원씩 노령연금을 받는 전 씨는 의료비 대출한도가 300만 원 정도로 나왔다.

실제로 국민연금공단이 신청자를 연령별로 분석한 결과 60∼64세(64.2%), 65∼69세(30.9%) 순이었다. 70세 이상은 5%(255건)였다. 용도별로 보면 전월세 자금을 마련할 목적으로 대출을 받은 경우가 62.5%였다. 나머지는 의료비(36.7%), 배우자의 장례비(0.5%), 재해복구비(0.3%)가 뒤를 이었다. 대출 신청액은 평균 392만 원.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일거리가 없는 노인은 당장 100만 원이 급한 경우가 많아 소액대출도 많다”고 설명했다. 2009년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인 67.4%는 “갑자기 자금이 필요할 경우 도움 받을 사람이 없다”고 답했다.


국민연금 실버론을 찾는 이유는 이자율이 시중은행의 절반 정도인 3.56%인 데다 장기 분할납부가 가능하기 때문. 예를 들어 500만 원을 빌린 사람이 5년 동안 상환하기로 했다면 다음 달 원금 8만3333원에 이자 1만4833원을 합쳐 약 10만 원을 갚는다. 대출금을 갚을수록 이자도 줄어든다. 다만 2회 연체 시 연금에서 그만큼 공제한다. 70세 미만은 연 0.5%의 수수료를 선공제하고 70세 이상에게는 연대보증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행운’도 일부에게 국한되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실버론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만 60세 이상 국민연금 수급자는 약 270만 명. 같은 연령대의 노인 인구 780만 명 중 35%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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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금 실버론 ::

만 60세 이상 국민연금 수급자에게 최대 500만원까지 시중금리의 절반 정도로 생활안정자금을 빌려주는 제도. 의료비, 배우자 장제비, 전월세 자금, 재해복구비에 쓰는 경우로 한정한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국민연금#실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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