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나의 NIE]“호외요~” 세상에 대한 호기심 일깨운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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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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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창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

나는 신문을 즐겨 읽는다. 아니 가벼운 중독증까지 있다. 신문을 보지 못하는 날이면 하루 종일 안정이 되질 않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시간이 남으면 부고(訃告)며 광고란까지 구석구석 읽는다. 이처럼 읽는 습관은 책과 사색을 좋아하게 만들어 내 삶에 큰 도움이 됐다고 믿는다. 스스로는 이런 습관에 은근히 자부심을 느낀다.

신문과 친하게 된 계기를 호외(號外)가 만들었다. 호외를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제는 단어조차 생소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신문사는 긴급한 뉴스가 있으면 호외를 발간했다. 신문판매원이 ‘호외요’ ‘호외요’ 하며 나눠주거나 신문사의 지프차가 길에서 뿌리며 지나갔다.

4·19혁명이 일어나던 1960년,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당시 신문은 한자투성이였다. 어린 나의 관심을 끌 만한 매체가 전혀 아니었다. 어느 날 우리 집 앞으로 데모대가 지나갔다. 이어서 어느 차가 종이를 마구 뿌렸다. 궁금해서 형과 아버지에게 물어보니 호외였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TV가 흔치 않던 시절에 세상의 소식은 라디오와 신문을 통해 알려졌다. “아! 저렇게 해서 사람들이 세상의 일을 알고 서로 나누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신문을 떠듬떠듬 읽고 어른들에게 아는 척하는 데 재미를 들였다. 이런 모습을 아버지가 보고 그즈음 창간된 소년신문을 1호부터 읽도록 신청해줬다.

어린이의 읽을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 신문에는 온갖 것이 다 들어 있었다. 과학과 탐험이 있었고 순정과 눈물이 있었다. 게다가 신문사에서 하는 무슨 공모에 당첨되어 ‘생명의 신비’라는 다큐멘터리 시사회에 초대됐다. 나의 신문사랑은 신문이 내게 준 것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다.

사랑이 깊으면 하늘이 시샘을 한다던가? 나의 신문사랑은 한동안 중단됐다.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사무실에서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세상을 떠났다. 어려움을 모르던 가계는 급격히 기울었다. 끼니를 걱정할 형편에 이르니 신문 읽기는 사치가 되고 말았다. 읽을거리에 대한 허기가 평생을 따라다닌 이유다.

도쿄에서 근무하던 2000년 봄의 일이다. 어느 날 출근하다 보니 시민들이 호외를 들고 있었다. 당시 오부치 일본 총리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다는 긴급기사를 담았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보지 못한 호외를 외국에서 대하니 신기하고 반가웠다. 호외, 아버지. 지나간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신문이 내게 가르쳤다.

배우창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
#교육#신문과 놀자#나의 NIE#배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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