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2014학년도 ‘A, B 선택형’ 수능, 일반계고는 대비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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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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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개정 교육과정에 맞춰 수업 소화 불가능” 우려 목소리

《최근 서울지역 A 일반계고의 진학연구부장 B 교사는 고2 시간표를 들여다보며 고민에 빠졌다.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시행되는 ‘선택형 시험(A, B형)’에 대비할 수 있도록 고2 정규수업을 운영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경우의 수를 따져 봐도 묘수를 찾을 수 없었다. 2014학년도 수능 B형 출제범위에 해당하는 교과목을 모두 포함시켜 정규수업 시간표를 짜는 게 구조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 2014학년도 수능 “특목고와 자율형사립고에 유리”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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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일반계고의 경우 현재 고2는 ‘2009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한 학기에 이수하는 과목은 최대 8개. 남은 4학기 동안 총 32개 과목을 정규 수업에 개설할 수 있는데 이 안에 국어, 영어, 수학 외에도 △탐구과목 △음악 △미술 △체육 △기술가정 △제2외국어 등의 수업을 포함시켜야 한다.

그동안 이수 교과목 수 제한 때문에 국어의 Ⅱ과목과 영어의 심화과목 등은 일부만 선택적으로 편성해 왔다. A 고의 경우 국어과목은 △화법과 작문Ⅱ △독서와 문법Ⅱ △문학Ⅱ는 3학년 2학기 때 세 과목 중 1과목만 선택해 수업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2014 선택형 수능 B형 출제범위에 국어의 ‘Ⅱ’와 ‘영어 독해와 작문’ 등의 과목이 포함되면서 혼란이 생겼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최근 발표한 ‘2014학년도 수능 예비시행 실시계획’에 ‘출제범위의 교육과정의 과목에 기초한다’고 나와 있기 때문. 국어 B형을 준비하는 학생은 출제범위에 해당하는 △화법과 작문Ⅱ △독서와 문법Ⅱ △문학Ⅱ 공부를 모두 해야 한다.

하지만 인문계열의 경우 국어, 영어 B형에 해당하는 교과수업을 해줘야 하는데 과목수가 많아 정규수업으로는 모두 소화가 불가능하다. 결국 학생들은 별도로 돈을 내고 방과후수업에서 Ⅱ과목 수업을 듣거나 개인적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게 된 것.

B교사는 “일반계고는 필수이수단위가 116단위라 수능 B형에 해당하는 교과수업을 다 소화할 수 없다. 반면 특목고는 필수이수단위가 72단위에 불과하고, 자율형사립고는 필수이수단위가 58단위에 지나지 않아 출제범위를 모두 소화할 수 있다”면서 “결국 2014학년도 수능은 교육과정상 특목고와 자율형사립고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B형 출제범위 학습, “원칙대로는 소화 불가능” vs “현실적으로 문제없어”


2014학년도에 실시되는 선택형 수능은 시험의 난이도에 따라 A형(쉬운 수능)과 B형(2012학년도 수준)으로 나뉜다. 국어와 수학은 동시에 B형을 선택할 수 없으며 B형은 최대 2과목까지만 선택할 수 있다.

교과부와 평가원은 “학생들이 자신이 치를 시험유형에 맞는 내용만 공부하면 되기 때문에 학습부담이 줄었다”고 주장하지만, 적잖은 고교 교사들은 “2009개정 교육과정에 맞춰 2014학년도 수능 출제범위에 해당하는 교과 수업을 모두 소화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제기가 ‘비현실적’이라는 반론도 있다. 일부 교사들은 ‘2014학년도 수준별 수능 실시에 따른 실질적 혼란은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교육과정을 그대로 다 반영해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갑자기 원칙을 문제 삼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

부산지역의 한 고교 C 교사는 “형식적으로는 교육과정의 원칙에 맞도록 시간표를 짜지만 실제로 수업이 그대로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다”면서 “기존에 공부해오던 방식대로 운영하면 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교사들은 “2014 수능 개편안의 취지가 ‘고교 교육의 정상화’인데 편법적으로 수업을 운영해 대비해야 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모순”이라는 입장. 서울의 한 고교 D 교사는 “2009개정 교육과정부터 한 학기 최대 이수교과 수가 최대 10개에서 8개로 줄었다. 게다가 올해부터 정부 방침에 따라 2학년의 음악, 미술 수업 비중이 늘어났고 집중이수제까지 시행하고 있다”면서 “고교 교육과정에 맞춰 정규수업으로 2014학년도 선택형 수능의 교과목을 모두 공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Ⅰ,Ⅱ로 나뉜 국어 출제범위… “국어 교육을 이해 못한 것”

국어교과의 경우 A, B형으로 나뉜 시험의 출제범위가 교육과정을 고려하지 않아 국어교육이 파행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2014학년도 수능 예비시행 실시계획’에 따르면 국어의 출제범위는 ‘A형은 △화법과 작문Ⅰ △독서와 문법Ⅰ △문학Ⅰ을, B형은 △화법과 작문Ⅱ △독서와 문법Ⅱ △문학Ⅱ를 바탕으로 다양한 소재의 지문과 자료를 활용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고교 국어교사들은 “국어과목을 수학Ⅰ과 수학Ⅱ처럼 상하개념으로 나눠서 가르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문학의 경우 문학Ⅰ은 ‘문학의 개념’ ‘문학의 역할’ 같은 문학이론을 다루지만 문학Ⅱ는 ‘한국 문학의 이해와 시각’, ‘한국 문학의 역사적 흐름’ 같은 문학사를 다루기 때문에 이 둘을 모두 가르치지 않으면 제대로 된 국어교육이 불가능하다는 것.

서울 강남지역의 한 고교 국어담당 E 교사는 “출제범위를 정해 놓아 혼란이 생기고 있다. 인문계열 학생의 경우 Ⅰ과목을 가르치려고 하면 ‘왜 시험범위가 아닌 내용을 공부해야 하느냐 Ⅱ과목 수업을 더 하자’는 식으로 불평하는 게 현실”이라며 “이미 일부 일반계고 인문계열 수업에서는 문학Ⅰ을 건너뛰고 문학Ⅱ 수업을 나간다”고 말했다.

한편 대부분의 학생은 B형에 맞춰 공부할 가능성이 높아 “공부할 과목 수를 줄여 학생들의 학업부담을 줄인다”는 목적이 실현될 가능성이 낮다는 현실적인 문제제기도 있다.

학생들이 치를 시험유형을 최종 선택하는 시점은 수능 원서를 접수하는 내년 8월인데 그 이전부터 A형에 맞춰 공부하는 학생은 사실상 없다는 것.

서울지역의 고교 F 교사는 “고2 학생의 학업수준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A형에 맞춰 공부하라’고 지도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2학년에게 A형 수준으로 공부하라고 하면 ‘상위권 대학에 갈 수 있는 B형 공부를 할 기회를 박탈당했다’며 학생과 학부모가 반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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