꾹꾹 눌러 쓴 부모님 편지 한통… 입학식장을 눈물바다로 만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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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업어서 등교시킨 우리 아들… 넉넉하게 못 키운 우리 손자 뽑아주셔서…
성균관대 2년전부터 정시합격자 부모에게 편지
올해 3500명 중 1700여명 답장… 입학식때 전달

21일 성균관대에 도착한 이은옥 할머니의 편지. 이 할머니는 편지에서 “손자가 나라를 빛낼 수 있는 인재가 되도록 키워 달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제공
21일 성균관대에 도착한 이은옥 할머니의 편지. 이 할머니는 편지에서 “손자가 나라를 빛낼 수 있는 인재가 되도록 키워 달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제공
“부족하고 배움도 없는 할머니입니다. 부모 없이 자란 우리 손자를 장학생으로 뽑아주셔서 뭐라 표현할 수 없습니다. 배움이 부족해 좋은 글은 올리지 못하고….”

21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 성균관대로 연습장에 쓴 편지 한 장이 도착했다. 편지는 글씨를 쓰는 데 익숙하지 않은 누군가가 쓴 듯 삐뚤빼뚤하고 맞춤법도 많이 틀렸지만 정성들여 꾹꾹 눌러 쓴 흔적이 가득했다. 편지의 주인공은 전남 순천에 사는 이은옥 할머니(72). 할머니는 성균관대가 올해 신입생 학부모에게 보낸 편지를 받고 1시간 동안 공을 들여 답장을 썼다. 할머니의 손자 손모 군(19)은 28일 이 학교 전자전기컴퓨터계열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성균관대는 2010년 입학식부터 독서진흥운동의 일환으로 ‘오거서(五車書·다섯 수레에 실을 만한 책이라는 의미로 많은 책을 뜻하는 말) 운동’을 하고 있다. 그해 신입생 학부모에게 총장의 축하편지, 추천도서 목록표, 빈 편지지 한 장을 보내 자녀에게 추천하고 싶은 도서 한 권과 자녀에게 보내는 편지를 답장으로 받는 행사다. 학교는 입학식 당일 부모가 추천한 도서와 편지를 학생에게 선물한다.

편지를 받은 할머니는 동이 트지도 않은 시간에 돋보기를 쓰고 힘겹게 쓴 편지에서 “조부모가 키워 모든 것이 넉넉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성균관대와 나라를 빛낼 수 있는 인재로 키워주기를 바란다”고 썼다. 할머니는 손 군이 100일 때 교통사고로 사망한 큰아들과 3년 뒤 재가한 며느리를 대신해 하숙집을 하면서 손자를 키웠다. 할머니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학교 측에 정말 고마워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고마운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내가 글을 잘 못써 학교 측에 폐가 되지나 않았을까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성균관대는 정시 합격자들의 학부모에게 편지 3500여 통을 보내 26일까지 할머니의 편지를 포함해 답장 1700여 통을 받았다. 속속 도착한 답장에는 자녀와 손자를 항한 절절한 마음과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 있었다.

뇌병변 장애 1급으로 이 학교 인문학부에 ‘자기추천전형제’로 당당히 합격한 홍성훈 군의 어머니 김옥희 씨(47)도 눈물의 편지를 보냈다. 말을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서지도, 움직이지도 못했던 아들에게 늘 책을 읽어주고 아들을 매일 업어서 학교에 보내는 등 20년 가까이 홍 군을 보살펴 온 김 씨는 “편지를 쓰며 지난 20년의 세월이 생각나 펑펑 울었다”며 “아이를 비장애인 못지않게 잘 키워보려고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이었는데 편지를 쓰면서 처음으로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을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의 노력 덕분에 홍 군은 한국작가회 백일장 등 전국 규모 백일장 대회 6개에서 상을 휩쓸기도 했다. 그는 A4용지 한 장을 가득 채운 편지를 통해 아들에게 “비록 힘든 재활치료를 받으러 다니며 벅찬 하루를 살았지만 하루하루가 동화처럼 행복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관계자는 “2010년 첫 행사 당시 입학식 당일 편지를 받은 입학생들이 편지를 펴보면서 입학식장이 눈물바다가 됐다”며 “책 선물과 부모의 편지 한 장이 학부모와 학생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하는 만큼 매년 입학식마다 행사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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