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유학생 10만 시대… 추악한 제노포비아]<中>인권 없는 알바 유학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2일 03시 00분


업주 “불법 알바 신고” 유학생 협박, 임금 떼먹어


‘월화수목금금금.’

중국 산둥(山東) 성 출신 Y 씨(27·서울 C대)는 3개월째 주말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요리사 아버지 덕에 고향에선 경제적 어려움 없이 지냈지만 2007년 유학 온 한국의 물가는 상상을 뛰어넘었다. 그나마 싼 편이라는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3평짜리 자취방도 보증금 300만 원에 월 30만 원을 줘야 했다. 교통비와 한 끼에 3000원이 넘는 밥값만 해도 한 달에 60만 원은 족히 든다. 한 달에 최소 120만 원은 벌어야 유학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Y 씨가 매일 오후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편의점에서 밤샘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다.

Y 씨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인보다 적게 받는 시급이다. Y 씨는 시간당 4500원을 받지만 같은 조건으로 채용된 한국인 아르바이트생은 6000원을 받는다. 16일 오전 1시 근무 중인 편의점 앞에서 만난 Y 씨는 “한국 친구들이 월급을 더 받아 속은 상하지만 당장 생활비가 급하기 때문에 항의할 생각은 못했다”고 했다.

○ ‘유학생 알바’ 허용은 됐지만

법무부는 2009년 6월 외국인 유학생의 안정적 생활을 위해 사전에 신고한 유학생에 한해 학기 중 주 20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실제 동아일보 취재팀이 최근 만난 외국인 유학생 125명 중 70명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현재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이 한국보다 1인당 평균 소득이 낮은 국가 출신이었다.

이들은 인터뷰에서 “한국 물가를 감안할 때 주당 20시간만 일해서는 생활비조차 충당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시간당 최저임금인 4320원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일주일에 8만6400원, 한 달에 34만5600원을 벌 수 있다. 주거비와 식비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더구나 외국인 유학생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할 때가 많다.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한 70명 중 3분의 1인 23명이 최저임금 미만의 시급을 받았다. 서울 S대로 3년 전 유학 온 중국인 탕정하오(唐正皓·22) 씨는 학교 앞 삼겹살집 보쌈집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최저임금 이상의 시급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는 “시급 4700원이라는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갔더니 ‘중국인이니 4000원만 주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는 우즈베키스탄인 압두말리코프 아짐베크 씨(21) 역시 식당 웨이터 일을 하다가 노래방 아르바이트로 옮겼다. 그는 “웨이터 일을 할 때는 최저임금보다는 많이 받았지만 생활비가 부족해 매달 100만 원씩 주는 노래방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주당 20시간 이상 불법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유학생이 대부분이다. 일부 악덕업주는 이 점을 악용해 임금을 깎거나 체불하기도 한다. 지난해 충북 청주시로 유학 온 중국 선양(瀋陽) 출신 류위자오(劉玉嬌·24·여) 씨는 “식당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사장이 2주일 넘게 월급을 주지 않아 발만 동동 굴렀다”고 했다. 전북 지역에서 공부 중인 중국인 여학생은 “칼국수집에서 일하고 돈을 받지 못해 결국 노동청에 신고했다”며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렸다.

○ 생활고는 성적 하락으로 이어져

밤샘 아르바이트에 치이면서 외국인 유학생의 학업 성적도 뒤처진다. 성적 미달로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더 많은 아르바이트를 해 학비까지 벌어야 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매일 오전 8시에 퇴근하는 Y 씨는 집에 들러 잠시 눈을 붙이고 오전 10시 반 다시 학교로 간다. 하지만 수업시간 내내 꾸벅꾸벅 졸기 바쁘다. 그는 “한국어 수업은 원래도 30% 정도밖에 이해를 못하는데 집중력이 떨어지니 더 뒤처진다”며 “시간에 쫓겨 발표나 과제도 제때 해내지 못할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두 달 전부터 서울 회기역 인근 포장마차에서 일을 하고 있는 중국인 궈신(22) 씨도 “오후 11시부터 오전 7시까지 밤새워 일하고 다음 날 다시 수업을 들으러 가려니 체력이 달린다”고 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부산=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 돈없어 휴학하고 성매매 수렁에 빠지기도 ▼

■ 곳곳에 검은 유혹의 손길


중국인 A 씨(22·여)는 2008년 9월 서울시내 명문 사립대에 입학했다. 무역업을 하던 부모님과 함께 살며 1년간 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사업이 잘 안 돼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고, A 씨는 서울시내 자취방에서 홀로 살았다. 등록금이 없어 학교는 휴학했고 비자는 지난해 3월 만료돼 불법 체류자가 됐다.

A 씨는 스스로 돈을 모아 다시 학교를 다니고 싶었다. 편의점과 식당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등록금은커녕 생활비를 대기도 빠듯했다. 좀 더 나은 일자리를 찾다 올해 8월 인터넷에서 중국인 유학생을 상대로 호프집 종업원을 구한다는 글을 봤다. 시급도 1만5000원으로 높았다. 찾아 가니 용산구의 한 유흥주점이었다. 업주는 “남자 1명을 접대하고 2차를 나가면 15만 원씩 주겠다”고 꼬드겼다.

A 씨는 다른 일을 하면서 한 달에 서너 번만 일하면 등록금을 모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일을 시작했다. 이 주점에는 중국과 몽골에서 온 유학생이 6명 더 있었다. 평일에는 식당에서 서빙하고 주말에만 이 주점에서 일했다. 그러나 9월 경찰의 성매매 영업 단속 때 A 씨는 다른 종업원과 함께 붙잡혔다. 불법 체류자 신분이었던 A 씨는 결국 지난달 5일 중국으로 강제 추방됐다.

좋은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일부 외국인 유학생은 범죄에까지 내몰리고 있다. 일부 학생은 큰돈의 유혹에 못 이겨 성매매까지 나선다. 성매매 업주들도 한국 여성보다 싼값에 고용할 수 있는 외국인 유학생을 모집하려고 인터넷에 광고까지 낸다. 생활고 탓에 등록금을 못 내고 학업을 중단하면서 비자 연장이 안 돼 불법 체류자가 되고 결국 범죄의 늪에 빠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 법무부가 현재 공식 집계하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 불법 체류자만도 4000여 명에 이른다.

범죄 유형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지난달 20일 외국인 유학생을 고용해 진료를 하게 한 혐의(의료법 위반 등)로 정모 씨(44) 등 치과의사 3명과 우크라이나 출신 유학생 B 씨(35)를 입건했다. 국내 명문대 치의학대학원에 다니는 B 씨는 정 씨의 병원에 통역사로 채용된 뒤 외국인 환자를 진료한 것으로 조사됐다.

취업을 노린 ‘가짜 유학생’도 잇따라 적발되고 있다. 2008년 12월 충남 아산시의 한 사립대에서는 중국인 유학생 10여 명이 브로커에게 800만∼1000만 원을 주고 고교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를 위조해 입학한 사실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적발됐다. 이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인근 산업단지 공장에 취업해 일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 中-동남아 학생 시간당 5000원 ‘막노동 알바’ ▼

영미권 출신은 편한 일 하면서도 2배 받아

국적따라 일자리 양극화

외국인 유학생들도 우리 대학생들처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국적과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일자리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영미권 학생들은 ‘고액 아르바이트’ 시장에서도 환영받는다. 중앙대에 다니는 에릭 헨슨 씨(20·미국)는 학교가 운영하는 ‘잉글리시 라운지’에서 매달 50시간 일한다. 외국인 학생을 위한 편의시설을 관리하고 안내하는 일인데 시급이 1만 원이다. 헨슨 씨는 “돈을 모아 이번 성탄절에 여행을 갈 것”이라며 “친구가 추천해 유학을 왔는데 한국 사람들이 정말 친절하게 대해줘 행복하다”고 말했다.

아시아 출신이라도 영어에 능숙하면 높은 시급을 받을 수 있다. 한양대에 다니는 웡수린 씨(22·여·말레이시아)는 최근까지 서울 잠실의 한 화장품 가게에서 일했다. 말레이어 외 영어 중국어에도 능숙해 주로 외국인 손님을 상대했다. 시급도 한국 아르바이트생보다 1000원 많은 6000원을 받았다. 그는 “일을 그만둘 때 사장님이 ‘조금만 더 일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반면 중국이나 베트남 등 개발도상국 출신에 영어가 서툰 학생들은 ‘일은 많고 받는 돈은 적은’ 아르바이트를 주로 한다. 충북 청주의 C대에 재학 중인 리장(李江·22) 씨는 주말마다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5시까지 전자제품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시급은 5000원으로 한 달에 받는 돈은 40여만 원이다. 그는 “무거운 물건을 자주 옮겨야 해 늘 힘들고 피곤하다”고 했다. 부산의 B대에 다니는 뉴톈이(牛天宜·21) 씨는 한국에 와서 처음 한 아르바이트가 전단지를 배포하는 일이었는데 시급으로 5000원을 받았다. 그는 “식당에서 일하다 보면 돈을 제때 못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해 돈 떼일 걱정 없는 일을 찾아서 하게 됐다”고 말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