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미국 경찰에 체포된 것으로 드러난 ‘이태원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아서 패터슨(32)의 묘연했던 12년간의 도피 후 행적이 밝혀졌다. 동아일보가 11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중앙지방법원 판결문과 미국 검찰의 체포영장 청구서 등 40여 쪽의 재판 기록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그는 ‘강력범죄자’와 ‘헬스클럽 트레이너’의 가면을 바꿔 쓰며 이중적인 삶을 살아온 ‘두 얼굴의 사나이’였다.
○ 미국 도주 이후에도 총기 강도
미국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패터슨은 미국으로 도망간 지 1년 만인 2000년 조직폭력단 활동과 총기 상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이태원 살인사건 당시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만 구속 기소돼 복역했으나 1998년 8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검찰은 패터슨의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않았고 그는 이 틈을 타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는 2009년에도 흉기 폭행과 강도 유괴 등의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1997년 당시 한국 경찰과 같이 수사했던 미 육군 범죄수사대(CID)는 패터슨이 히스패닉계 갱단인 ‘노르테 14’의 단원이라는 조사 결과를 밝히기도 했다.
미국 검찰은 한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을 받아들여 올해 5월 17일 캘리포니아에서 패터슨을 체포하고 구금한 뒤 법원에 보석 금지를 신청했다. 검찰은 전과기록을 토대로 “폭력적인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패터슨의 변호인은 6월 8일 보석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거부했고 패터슨은 다음 날 구속 수감됐다. 그는 현재 범죄인 인도 재판을 받고 있다.
○ 성실한 대학생, 헬스클럽 트레이너
패터슨의 변호인이 보석 신청을 내며 제출한 변론서에 따르면 패터슨은 2002년 9월 캘리포니아 주 서부 샐리너스 시의 2년제 대학인 힐드 칼리지에 입학했다. 컴퓨터정보기술을 전공했고 4점 만점에 3.05의 학점으로 총 99학점을 이수해 2004년 7월 학위를 받았다. 첫 학기에는 수강 과목 전부 A학점을 받았으며 출석률(90∼98%)도 높았다.
그는 졸업 후 할리우드의 한 헬스클럽에서 트레이너로 일하며 2007년에는 우수 트레이너 증명서를 받았다. 직장 동료들은 “지각 한 번 없이 하루 12시간씩 일할 만큼 성실했다”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변호인은 또 “성실한 학창시절을 보냈고, 어머니를 잘 모시는 사랑받는 청년”이라고도 했다.
그는 자신의 명의로 로스앤젤레스의 한국인 밀집 거주지인 라피엣에 40만 달러(약 4억7000만 원) 상당의 주택을 갖고 있었고, 일본 스즈키 사가 만든 고급 오토바이도 소유하고 있었다.
○ ‘12년 이중생활’…우리 검찰은 뭐했나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는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개봉하면서 재수사를 촉구하는 여론이 일자 2009년 12월 법무부를 통해 뒤늦게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다. 미국 법원의 기록에 따르면 우리 검찰은 “(영화, 언론 보도 등) 미디어가 국민 정서를 다시 자극했다”며 “우리 국민은 한국과 미국 정부가 피의자를 기소해 정의를 실현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요청서에 썼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찬운 교수는 “범죄인 송환은 수사당국의 강력한 의지가 필수”며 “검찰의 실수로 용의자를 놓친 만큼 신속히 재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패터슨은 미국 검찰이 체포영장을 청구한 지 7일 만에 체포됐다는 점에서 검찰의 범죄인 인도 청구가 더 빨랐다면 신병도 더 일찍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은 패터슨이 미국으로 도주한 뒤에도 기소중지만 했고 2009년에서야 범죄인 인도 요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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