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세요”…‘수상한 교통사고’ 택시안에서 무슨일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5일 07시 12분


추석 연휴 첫날이던 지난해 9월21일 새벽 3시25분, 오래전 막차가 떠난 지하철 5호선 답십리역 인근.

적막한 거리에서 술에 취해 비틀대던 직장인 A 씨(41)는 B 씨(70)가 운전하는 택시 조수석에 몸을 싣고 귀갓길을 재촉했다.

부쩍 차가워진 밤 공기를 뚫으며 가다서다를 반복하다 장안평역 사거리에서 1분여간 신호를 기다린 택시는, 이후 시속 42㎞까지 천천히 속력을 높여 운행하던 중 갑자기 옆 차선의 택시와 부딪친 뒤 인도로 돌진해 가드레일과 가로수, 보행자 C 씨(28·여)를 잇따라 들이받았다.

C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외상성 뇌출혈로 숨졌다.

사고로 말미암은 피해는 명확했지만, 사고 직전 좁은 택시 안에서 벌어진 상황은 모호했다.

B 씨는 경찰 수사에서 "안전벨트를 착용하라고 했더니 A 씨가 마구 때렸고, 피하려고 머리를 숙이는 바람에 브레이크를 밟지 못해 사고가 났다"고 주장했고, A 씨는 "술에 취해 잠을 자고 있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1심 재판부는 B 씨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여겨 A 씨의 운전자폭행치사 혐의를 유죄로 판단, 지난 2월 징역 3년6월의 중형을 선고했다.

재판부의 판단에는 B 씨가 사고 직후 뇌진탕 등 상해를 입은 상태로 A 씨의 허리를 붙잡고서 "살려주세요, 112에 신고해주세요"라고 소리치고 있었다는 목격자들의 진술도 주요한 근거가 됐다.

한편 B 씨는 별개의 재판에서 업무상 과실로 교통사고를 낸 데 대해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으며, 그가 항소하지 않아 올해 5월 확정됐다.

하지만 A 씨와 검찰의 쌍방항소로 진행된 2심 재판에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재판부는 택시 안에서 A 씨가 했다는 욕설의 내용과 맞았다고 주장하는 부위의 순서 등에 대한 B 씨의 진술이 경찰, 검찰, 원심과 항소심 법정에서 계속 달라지는 점에 주목했다.

또 사고로 A 씨가 거의 다치지 않은 것에 비춰보면 당시 그가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과, 폭행이 이뤄지는 동안 정상적으로 가속페달을 밟기 어려웠을 텐데도 차량이 완만히 가속된 사실도 B 씨의 주장을 믿기 어렵게 했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는 "정황상 B 씨의 주장은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고, 원심에서 제시된 유죄의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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