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투표]오세훈號 서울시정 어디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4일 21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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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뱃길,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등 중단될듯10월 이후 사퇴시 시의회와 공방 계속 전망

24일 치러진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투표율 저조로 무산되면서 오세훈 시장은 당초 공언한 대로 시장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게 됐다.

오세훈 시장은 주민투표에서 실패할 경우 시장직을 사퇴하겠다는 자신의 약속에 따라 "하루 이틀 내에" 거취를 발표할 것이라고 이종현 서울시 대변인이 밝혔다.

오 시장이 어느 시점에 사퇴하느냐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서울시는 짧게는 1개월여에서 길게는 반 년 넘게 권영규 행정1부시장의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될 수밖에 없게 됐다.

권한대행 체제에서 서울시는 인사와 정책 및 예산 집행계획 변경 등을 최소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멀게는 민선 4기 시절부터 오 시장이 야심차게 추진해왔던 정책의 상당수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일단 표류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서해뱃길사업이다.

서울 한강과 경인아라뱃길을 잇는 15㎞ 뱃길을 조성하고 국제 크루즈선이 오갈 수 있게 해 중국의 신흥 부자 관광객을 유치하자는 게 이 사업의 골자다.

그러나 여소야대 형국인 시의회 민주당 의원들이 이 사업의 올해 예산 752억원을 전액 삭감하는 등 완강하게 반대해온 상황에서 오 시장마저 물러나면 결국 백지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서울항조성사업, 한강예술섬 조성 등을 포함한 한강 르네상스 사업의 앞날도 어둡다.

특히 한강예술섬은 당초 6천735억원을 들여 2014년까지 완공하기로 돼 있었지만 시의회가 지난해 말 예산 승인을 보류해 설계비와 토지매입비 등으로 554억원이 들어간 상태에서 공사가 중단된 상황이다.

올해 들어서는 민간 투자를 받아 건립하는 방안이 추진돼왔지만 권한대행 체제에서는 더 진전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시의회로부터 올여름 수해의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은 디자인서울 사업도 중단이 불가피하다.

다만, 이미 상당한 정도로 공사를 끝낸 건축, 도시개발 사업은 그대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각각 예산 3000억원과 4100억원이 들어가지만 이미 공정률 30¤40%를 보이는 서울신청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사업이 여기에 해당된다.

연말까지 대부분 완공될 예정인 디자인서울거리 3차 사업도 차질을 빚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장환진(건설위원회) 시의원은 "전시성 토목건설을 지양하고 사람에게 투자하는 쪽으로 예산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게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폭넓게 형성된 공감대다. 권한대행 체제의 서울시가 이 점을 잘 이해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지난 1년여간 극심한 갈등 양상을 보여온 시의회의 공세는 이번 주민투표를 기점으로 일단 누그러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오 시장이 사퇴 시점을 10월 이후로 미룰 경우 총선과 함께 치러지는 내년 4월 상반기 보궐선거에서 새 시장을 뽑게 돼 양측 사이에 또 한 번의 날 선 공방이 오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주민투표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올 하반기 보궐선거에서 야권 인사를 시장 자리에 앉히려는 게 민주당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디지털뉴스팀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패배한 책임을 지고 26일 물러난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5년 2개월여간 펼쳐온 시정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한강 르네상스', '디자인 서울' 등 소프트웨어적 측면을 강조한 각종 도시개발 사업을 통해 시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있지만 전시성 행정으로 민생을 외면했다는 부정적 평가도 나온다.

오 시장의 서울 구상은 민선 4기 모토인 '맑고 매력 있는 세계도시 서울'로 요약된다.

과거의 난개발을 지양하고 삶의 질 향상과 도시 경쟁력 강화에 주안점을 둔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시개발을 추구하자는 것이었다.

한강 르네상스는 이 같은 오 시장의 바람이 집약된 사업이었다.

단순한 치수 역할에 머물러 있던 한강을 관광자원화하는 것은 물론 도시계획의 중심축으로 설정해 한강이 명실상부한 서울의 상징이 될 수 있도록 개발한다는 게 오 시장의 구상이었다.

이를 위해 단순한 휴식공간에 머물러 있던 반포, 뚝섬, 여의도, 난지 등 4개 한강공원을 생태체험, 문화생활 등을 즐길 수 있는 특화공원으로 만들어 시민의 호평을 받았다.

지난 5월에는 세계 최대 규모인 한강 인공섬 '세빛둥둥섬'을 개장해 커다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휴일에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한강 자전거도로를 서울 지천까지 이어 접근성을 크게 높인 것도 오 시장의 공으로 꼽힌다.

디자인서울 역시 오 시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한 핵심 사업이다.

모두 50곳의 '디자인서울 거리'를 조성해 공공 가로시설물의 외관을 개선하고 건물 외벽을 어지럽게 메웠던 간판과 광고물을 대거 정리했다.

과거 동대문운동장 등이 있던 자리를 디자인 및 패션산업을 중심으로 한 서울경제의 거점으로 조성하기 위해 최첨단 건축기술이 동원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준공하기도 했다.

여의도 금융지구를 지정하고 마곡첨단산업용지를 조성한 것도 도시 경쟁력 강화차원에서 적지 않은 성과라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벨연구소, 프라운호퍼 연구소, 메트로폴리스 국제연수원 아시아센터, 세계여성네트워크 서울사무소 등을 유치해 동북아 중심도시로서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이 같은 오 시장의 정책은 서울의 겉모습을 바꾸는 데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붓느라 정작 글로벌 금융위기로 어려워진 시민의 생활을 돌보고 생태환경을 개선하는 데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특히 한강 르네상스와 디자인서울 사업에는 '반생태적 한강 개발' '이미지만 중시하는 낭비성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일각에서는 6000억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간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자연성 회복이라는 측면을 도외시한 대규모 조경공사일 뿐이라고 혹평했다.

디자인서울 사업을 시행하면서는 노점상 거리를 정돈하고 가판대 교체작업을 벌이자 형편이 어려운 서민들 돌보기보다 부자들만을 위한 시정을 펼치려 한다는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또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은 운영 과정에서 갈등이 끊이지 않아 '소통 없는 일방적 정책 집행'의 대표 사례로 꼽혔다.

이러한 오 시장의 과오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명숙 후보와 치열한 경합 끝에 가까스로 시장직은 지켜냈지만 시의회 다수석은 민주당에 내주는 결과를 낳는데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민선 5기 들어 무상급식 논란을 중심으로 1년여 간 계속된 시의회와의 갈등국면을 슬기롭게 풀어나가지 못하고 주민투표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은 오세훈 서울시정 5년의 최대 실정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뉴스팀

▲동영상=오세훈 시장 시장직 사퇴 기자회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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