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백혈병 산업재해” 판결 후폭풍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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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인정기준 확대 계기될까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근로자들이 백혈병에 걸려 숨진 것이 산업재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정부가 대책 마련 검토에 나서는 등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유족들은 “원고 5명 중 2명만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상급심에서는 나머지 3명도 산업재해로 인정받겠다”며 승소 의지를 다졌다.

○ 대책 마련에 나선 정부

고용노동부는 24일 “일단 판결문 내용부터 확인하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산업재해를 담당하는 고용부 산재보상정책과 관계자는 “현재 소송 중인 개별 사안이라 부처 차원에서 특별한 입장이나 대책을 세우진 않았다”며 “2주 후 송부되는 판결문을 입수해 구체적 내용을 확인하고 나서 대책 마련 등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판결문 내용을 확인한 뒤 유사 소송이 잇따를 때 이를 산재로 인정할지를 결정키로 했다. 또 근로복지공단 판정 절차에 문제는 없었는지 등도 살펴볼 방침이다.

또 고용부는 “이번 판결과 유사한 사례는 현재 진행 중인 산재 인정기준 개선 방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고용부에 따르면 현재 노사정이 참여한 ‘산재보험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에서 산재 인정기준 확대 등을 논의하고 있다. 노사정이 추천한 의학전문가 9명은 현재 확연히 인과관계가 드러나는 물리적 사고 외에 원인이 불분명한 직업성 암, 허리 등 근골격계 질환 등을 어느 선까지 산재로 인정할지, 그 기준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고용부는 설명했다. 향후 이번 소송과 유사한 사례가 나올 경우 노사정의 산재보험제도 개선책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전면 재조사를 촉구하는 유족

유족들은 “100% 만족하진 않지만 일부라도 승소해 다행”이라면서도 “항소심과 상고심에서는 5명 모두 이길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승소한 고 황유미 씨(여)의 아버지 황상기 씨(55)는 “개인적으로는 승소해 다행이지만 세 분이나 패소해 마냥 기뻐할 상황은 아니다”며 “이제 법원도 다른 판결을 내린 만큼 정부가 이번 사건에 대해 전면 재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역학조사 과정에서 삼성 측이 원하는 대로 조사가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며 “법원이 역학조사가 부실했던 점을 일부라도 인정해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황 씨는 삼성전자 온양·기흥공장 반도체 생산 라인에서 일하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2007년 3월 숨졌다.

패소한 고 황민웅 씨의 부인 정애정 씨(34)는 “남편이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직접적인 발병 원인으로 인정하지 않은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정 씨는 “항소심, 상고심에서 산업재해로 인정받도록 사실관계를 입증할 것”이라며 의지를 다졌다. 기흥공장에서 일하던 황 씨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으로 2005년 사망했다.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2005년 백혈병에 걸려 6년째 투병 중인 김은경 씨(40·여)는 “나는 비록 패소했지만 두 분이라도 승소해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며 “그동안 몸이 아파 재판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는데 항소심부터는 온양공장의 작업환경도 다른 공장 못지않게 열악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증인을 모으는 등 열심히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 조심스러운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반도체 근무환경에 대한 객관적 진실이 규명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반복했다. 특히 “제3자인 ‘인바이런’이라는 근로환경 전문 컨설팅업체가 1년 동안 역학조사한 결과를 7, 8월에 발표할 예정”이라며 “그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다른 얘기가 나올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언급을 피했다. 대외 접촉을 담당하는 직원 모두 ‘예민한 문제’임을 강조하며 입을 다물었다. 경영진이 판결 이후 직접 대응방안을 면밀히 검토하며 ‘신중한 대응’을 거듭 강조했기 때문이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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