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는 100번째 ‘청소년 의회교실’이 열렸다. 학생들은 의장 선출, 만화 채널 야간시청 제한 조례안 등의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토론을 벌이는 등 실제 의회처럼 열띤 의정활동을 펼쳤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만화 채널을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만 본다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늦은 시간에 만화를 보는 성인을 고려해 야간방영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때 아닌 만화 채널 야간시청 제한 조례안 처리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펼쳐졌다.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이날 본회의장을 가득 메운 이들이 정장 차림에 넥타이를 맨 시의원이 아닌 앳된 초등학생 ‘어린이 시의원’이었다는 것.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100회 청소년 의회교실’을 찾았다.
○ 의장 선거에서 조례안 처리까지 그대로 재연
이날 열린 의회교실은 강동교육청 관내 초등학교 50여 곳에서 온 학생 108명이 참여했다. 오전부터 시작된 의회교실은 3건의 안건을 처리하는 과정을 직접 학생들이 재연하며 진행됐다. 첫 번째 안건은 의장 선출 건. 후보로 나선 이들은 2분 동안 의사발언대에 올라 자신이 의장직에 선출돼야 하는 이유를 조리 있게 설명했다. 실제 의장 선거는 전자 투표가 아닌 무기명 직접 투표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날 어린이 시의원들은 투표용지를 받아들고 본회의장 안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진지하게 투표를 했다. 이날 오전 일정과 오후 일정을 책임질 의장으로는 17표를 받은 길동초교 6학년 강민호 군(12)과 14표를 받은 남천초교 6학년 노동형 군(12)이 선출됐다. 평소 본회의장 안에서는 박수를 치지 않지만 이날만은 선출된 어린이 의장을 향해 큰 박수가 쏟아졌다.
조례안과 의결안 처리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진행됐다. 만화채널 야간방영 제한에 관한 조례안 처리와 어린이 위치추적 시스템 의무화 결의안 처리에 앞서 찬반 토론을 벌였다. 장동초교 6학년 이예지 양(12)은 위치추적시스템 의무화에 찬성하며 “실종사고를 막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어린이 사생활 침해보다 안전 보장이 우선”이라고 똑 부러지게 발표했다. 오전과 오후에 걸쳐 진행된 토론 끝에 실시한 전자투표에서 만화채널 야간방영 제한 조례안은 찬성 44표, 반대 53표로 근소한 차로 부결됐다. 어린이 위치추적시스템 의무화 결의안 역시 찬성 31표와 반대 56표를 받아 부결됐다.
○ 15년 동안 어린이 시의원 1만여 명 배출
1996년 처음 시작된 청소년 의회교실은 벌써 올해로 15년째를 맞았다. 2005년 전자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더 많은 학생을 일일 명예 시의원으로 ‘모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의사일정 등을 조율하다 보니 1년에 열 번 정도 의회교실을 열었다. 딱딱하게 느껴지는 의회활동을 교내 폐쇄회로(CC)TV 설치, 조기 영어교육 반대, 인터넷 중독 방지 등 초등학생들에게 친숙한 주제로 학생들에게 직접 재연하게 해서 쉽고 재밌게 배울 수 있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이날 본회의장 2층에 마련된 방청석에서 아이들의 의정활동을 지켜보던 학부모 이윤정 씨(39·여)는 “초등학교 6학년생 아들이 100여 명 앞에 서서 밤새도록 준비한 원고를 읽는 게 대견해 보였다”며 “아이들이 의회라는 곳이 TV에서 보이는 것처럼 만날 싸우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의정활동을 펼치는 곳이라는 걸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경주 서울시의회 의사담당관은 “한 번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이 한정돼 있어 학교당 1, 2명씩밖에 오지 못해 아쉽다”며 “앞으로 더 많은 학생이 의정활동을 배우고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의회교실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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