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인 복지포럼]<2부>한국 복지의 미래 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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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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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발표]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성숙 국민연금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복지포럼 2부 첫 발표자로 나선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복지의 최우선 원칙으로 ‘지속가능성’을 꼽았다. 석 교수는 “쓸 수 있는 자원은 줄고 국민의 복지 욕구는 증가하는 데다 통일 변수까지 더해져 한국 복지는 더욱 복잡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과 출산, 고령인구 부양, 양육 환경 개선을 통해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진 복지국가 중 스웨덴 같은 사민주의 국가들은 복지 지출이 많지만 국가채무수준은 낮고 고용률은 높아 지속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남유럽 국가들은 복지지출 수준은 높지만 불평등 지수도 높아서 성공적 복지모델이라 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이 남유럽 같은 복지국가로 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남유럽은 교사 공무원 등 선거에 영향력이 큰 특정 직종 노동자에게 복지 혜택이 집중되고 나머지는 혜택에서 소외되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복지의 양극화를 막으려면 보편주의적 복지를 늘려 내수 확대로 이어지는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한국은 이미 보편주의적 제도를 많이 갖췄다”며 “건강보험이 대부분 국민에게 적용되고 있으며 기초노령연금도 노인의 70%가 수혜자인 준보편주의 복지정책”이라고 말했다. 또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을 위해서는 재원 조달방안, 과도한 민간공급자 문제, 노동시장의 불평등 등 보편적 복지의 장애 요인을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성숙 국민연금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한국 복지제도의 틀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 위원은 “한국은 국민연금, 기초노령연금, 퇴직연금 등 노후 대비를 위한 제도는 잘 갖춰졌지만 실질적 혜택은 아직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김 위원은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는 방안으로 “여성, 저소득 노동자 등 약자를 위한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했다고 해도 노인과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등 추가적인 공적 부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복지 양극화 갈수록 심해져… 성장과 선순환 구조 갖춰야” ▼

‘100인 복지포럼’ 2부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참석자들. 왼쪽부터 백종만 전북대 교수, 박찬용 안동대 교수, 유태균 숭실대 교수, 조흥식 서울대 교수, 최준욱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00인 복지포럼’ 2부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참석자들. 왼쪽부터 백종만 전북대 교수, 박찬용 안동대 교수, 유태균 숭실대 교수, 조흥식 서울대 교수, 최준욱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한국 복지의 미래 좌표’라는 소주제를 갖고 진행된 세미나 2부에서는 현재 한국 복지의 미래 좌표를 논할 수 있는 기반이 너무 약하다는 문제가 가장 먼저 지적됐다.

○ 복지 통계 없어 좌표도 잡기 힘들어


박찬용 안동대 경제학과 교수는 “복지의 새 좌표를 찾기 위한 통계나 지표가 대단히 미흡하다”고 말했다. 미래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얘기하려면 우리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게 우선인데 그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우리는 성격에 따라 어디로 가는지만 얘기하고 정작 우리가 어떤 성격인지는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 복지의 현 위치를 정확히 알려면 복지 관련 통계와 자료 정리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합의 없어 책임 의식도 희박


복지 제도에 대해 국민의 동의를 얻기 위한 노력이 부족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유태균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은 서구 국가에 비해 복지 제도를 도입하고 실천한 역사가 매우 짧다. 하지만 복지 국가로 가는 길에 맞닥뜨린 위험은 똑같다”고 말했다.

여러 복지 제도를 먼저 세우고 실천한 유럽 국가들은 120년 전부터 갖가지 논쟁과 실험을 거쳐 오늘날의 제도를 완성했다. 한국은 1990년대에 들어서야 사회보험제도를 만들었고 5대 보험(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 노인장기요양보험)을 갖추게 된 것도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다.

역사가 짧다 보니 제도에 대해 국민을 이해시키는 과정도 거의 없었다.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놓고 ‘일단 들어오라’고 강요하기만 했다. 유 교수는 “토착화 과정 없이 복지 제도가 쏟아지다 보니 국민의 복지에 대한 욕구는 높아졌지만 복지는 비용이 들고 결국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는 부분에 대한 인식은 부족해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시민단체와 진보학자들도 복지를 누릴 권리만 강조했을 뿐 이에 수반돼야 할 책임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 자칫하면 남유럽식 복지로 간다


한국 사회에서 복지의 이상향을 두고 ‘스웨덴식으로 가야 한다’, ‘아니다, 영미식이다’ 등의 논의가 벌어지지만 보통 사람들에겐 탁상공론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 있다. 복지 제도 도입은 대부분 정부가 외국 제도를 가져와 일방적으로 시행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2부 첫 발표자였던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도 북유럽식 사민주의를 지향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그에 따르면 한국의 재정 지속가능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4위, 경제적 지속가능성은 12위로 비교적 높았지만 복지충족성은 28위, 국민체감행복도는 29위, 종합순위는 26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노르웨이 1위, 스웨덴 5위, 핀란드 8위 등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들은 대부분 높은 순위였다.

하지만 두 번째 발표자인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이 사민주의 복지체제로 갈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잘라 말했다. 김 교수는 오히려 노동시장 양극화에 따라 복지 혜택도 양극화되는 남유럽형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 새 좌표 설정은 절박한 과제


한국 복지 이상향에 대한 논란이 계속될수록 국민이 느끼는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토론자로 나선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 복지의 새 좌표를 찾는 것이 얼마나 절박한 문제인지 아직 잘 모르는 분이 많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조 교수는 한국에는 비정규직 노동자, 노령 인구, 청년실업자 등 절박한 위치에 있는 이들이 많으며 한시라도 빨리 새로운 복지의 좌표를 설정해 실천하지 않으면 이들이 점점 약자로 전락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 교수는 “한국은 성장을 압축적으로 했는데 분배는 왜 압축적으로 못 하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선진국들이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줄곧 성장을 이어갔다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이미 10만 달러를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유럽이 GDP 성장을 어느 정도 선에서 늦추고 오늘과 같은 복지 국가로 발전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 정부 신뢰도 복지의 관건


조 교수는 복지 사회 확립과정에서 가져야 할 4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기본은 평화 체제. 그는 “1940년 대 초, 영국 성공회 대주교는 ‘welfare state(복지국가)’는 ‘warfare state(전쟁 국가)’의 반대 개념으로 쓰였다”고 설명했다. 둘째는 민주주의, 셋째는 자본주의다.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하는 국민들이 정책에 참여할 때 진정한 복지가 실현된다는 것.

김연명 교수도 주제 발표에서 “복지가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경제 발전이 다시 풍요로운 복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한국은 이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복지 사회를 위한 정부의 책임도 강조됐다. 복지 정책이 잘 실현되려면 국민이 정부 정책을 신뢰해야 한다. 유태균 교수가 복지 제도를 수립하는 데 국민들을 이해시키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 국민연금 기금 논쟁도 재연


포럼 말미를 뜨겁게 달군 것은 국민연금이었다. 김성숙 국민연금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현재 한국의 공적연금 제도 내에서 여성과 저소득층 계층에 대한 혜택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최준욱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그리고 한정된 재원을 갖고 어떻게 쓸지 심도 있는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330조 원에 이르는 국민연금기금의 활용 방안도 논란의 대상이었다. 김연명 교수는 “지금처럼 대기업 주식과 채권에 연기금을 투자하는 것은 미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중소기업과 신성장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김성숙 연구위원은 “연기금을 쌓아두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가입자들에게 연금을 주기 위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안정성이 떨어지는 사업에 연기금을 투자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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