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폭침 1년]제2연평해전 유가족, 천안함 1년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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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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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보다 안보가 중요… 1년 지났지만 나아졌나 의문”

《 전국이 한일 월드컵 열기에 빠져있던 2002년 6월 29일. 이날 오전 서해 연평도 서쪽 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의 선제 기습 포격으로 남북 함정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이 교전으로 해군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했으며 해군 고속정 1척이 침몰했다. 하지만 당시 김대중 정부와 관계당국의 무관심 속에 이들에 대한 기억은 점차 세간의 뇌리에서 사라져갔다. 그로부터 8년 후 또다시 북한 공격으로 천안함이 폭침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제2연평해전 유가족들은 25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우리 아들들은 무관심에 잊혀져 갔지만 천안함 46용사들이라도 잊지 말고 안보에 대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고 입을 모았다. 》
■ 윤영하 소령 아버지 윤두호 씨, 희생 걸맞은 명예 지켜줬으면

“그 사람들은 아마 죽어서도 진실을 믿지 않을 겁니다.” 2002년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했던 고 윤영하 소령의 아버지 윤두호 씨(69)는 천안함 폭침 1년을 하루 앞둔 2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아직도 일각에서 주장하는 ‘천안함 괴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부에서는 천안함 폭침이 북한 어뢰 공격 때문이라고 공식 발표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각에서는 이를 믿지 않고 있다. 윤 씨는 “이런 괴담 때문에 천안함 46용사 유가족들이 여전히 아파할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윤 씨는 “하지만 (천안함 폭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인 것을 잘 아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을 유가족들이 단 한순간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위로했다. 그는 “제2연평해전은 너무 쉽게 잊혀졌지만 그나마 천안함 전사자들에 대한 추모 분위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은 다행”이라며 “앞으로도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게는 국가와 국민이 그에 걸맞은 명예를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 한상국 중사 아버지 한진복 씨, 연평해전 쉬쉬한 前정부 섭섭


“사상자가 있다고 해서 사실을 감추려고 했던 국가의 태도가 천안함 폭침 1년을 맞는 요즘 더 섭섭하게 느껴집니다.” 제2연평해전 당시 전사한 고 한상국 중사의 아버지 한진복 씨(65)는 “천안함 폭침 사건 희생 장병도, 제2연평해전 희생 장병도 모두 국가를 위해 헌신한 군인”이라며 “국민이 천안함 사건에 관심을 가지듯 제2연평해전 전사자에게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25일 말했다. 고 한 중사의 가족은 이 같은 섭섭함이 다른 유가족보다 조금 더 크다. 2005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한국전쟁 기념물 건립위원회’ 창립행사에 참석한 한 중사의 아내 김종선 씨(37)에게 주최 측에서 최상석에 해당하는 존 케리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옆자리를 내준 것. 한 씨는 “천안함 폭침 1년을 맞아 국가와 국민이 전사 장병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천안함뿐 아니라 우리 연평해전 유가족들도 힘을 내서 살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 조천형 중사 어머니 임헌순 씨, 연평 전사자는 홀대당하는 듯


조천형 중사의 어머니 임헌순 씨(64)는 25일 “연평해전 전사자들이 (천안함 46용사에 비해) 너무 홀대당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천안함 폭침사건은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사후 정부 지원이나 추모 열기는 뜨겁다”며 “반면 연평해전은 이미 잊혀져 버린 사건이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제2차 연평해전 전사자 6명은 당시 군인연금법에 ‘전사’ 항목이 없다는 이유로 ‘공무상 사망자’로 처리돼 3000만∼6000만 원 정도의 보상금을 받았다. 전사로 처리된 천안함 46용사 보상금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당시 연평해전 전사자 영결식에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국방부 장관 등은 참석하지 않았다. 임 씨는 “이명박 대통령이 연평해전 전사자들에게도 천안함 46용사와 같은 보상을 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두 달에 한 번씩 현충원을 찾는데 9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의 상처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 황도현 중사 아버지 황은태 씨, 北소행 안믿는 이들 안타까워


“추모(행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대북) 경계태세 확립입니다. 천안함 폭침 1년이 지났지만 그때보다 안보가 더 나아졌는지 의문입니다.”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황도현 중사의 아버지 황은태 씨(64)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황 씨는 2002년 아들이 비명에 간 이후 이제는 안보 관련 집회의 단골 연사가 됐다. 그는 “아들의 죽음이 잊혀질까 두려워 목소리 높여 안보를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25일 열리는 서울 광화문 천안함 추모 집회에는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우리 애들(제2연평해전 전사자들)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데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황 씨는 “천안함 폭침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북한의 공격 자체를 믿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안타깝다”며 “천안함 폭침 사건이 불러일으킨 국민적 관심을 꼭 안보태세 확립으로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해 동아일보가 ‘MIU 제복이 존경받는 사회’를 기획 보도했지만 여전히 군인들에 대한 존경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 서후원 중사 아버지 서영석 씨, 유족들 함께 힘내 살아갔으면


제2연평해전 당시 기관총 사격을 하다 전사한 서후원 중사의 아버지 서영석 씨(58)는 최근 찾은 국립현충원에서 아들 영정 앞에 사과 몇 개를 올렸다고 한다. 서 씨는 “아들이 전사한 후 3년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과수원을 이제 힘을 내서 열심히 가꾸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 씨는 유가족 모임에서 총무를 맡아 매년 정기모임을 주선하며 유가족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국가와 국민에게 아들들의 업적을 더 알려야 한다”고 다독이고 있다. 서 씨는 2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제2연평해전이 국민에게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들의 유품을 집에 남겨놓지 않고 평택 2함대와 용산 전쟁박물관에 기증했다”며 “그런데도 지금은 연평해전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으니 섭섭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도 사랑하는 아들, 형제를 잃은 유가족들의 슬픔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며 “천안함 유가족들뿐 아니라 우리 제2연평해전 유가족들도 힘을 내서 살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 박동혁 병장 아버지 박남준 씨, 지속적인 관심 가족들엔 큰힘


박남준 씨(55) 부부는 아들 고 박동혁 병장을 제2연평해전으로 떠나보낸 후 경기 안산시에서 강원 홍천군으로 이사를 갔다. 집도 아닌 중고 컨테이너에서 아내와 아들만 그리며 보낸 시간만 6년이 지났다. 박 씨는 “아들을 잃고 나서 사람을 만날 수도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피폐했다”라고 이사 이유를 말했다. 외동아들이었던 박 병장이 전사해 박 씨 가족은 제2연평해전으로 대가 끊긴 세 가족 중 한 집이 됐다. 하지만 박 씨 부부는 1년 전부터 다시 집을 짓고 작은 밭을 가꾸고 소를 기르며 살고 있다. 술도 자제할 수 있게 됐고 우울증 증세도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새로 지은 집 방 한쪽에는 아들 이름을 딴 함선의 모형과 유품 등을 전시했다. 박 씨는 “유품으로 꾸며놓은 공간을 보면서 항상 동혁이의 넋을 추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씨는 “동아일보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줘서 유족들에게 큰 힘이 됐다”며 “동아일보 독자는 물론이고 모든 국민이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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