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공존을 향해/4부]<4>1등 아닌 ‘I 등’을 꿈꾼다… 발전적 개인주의자 2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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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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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독존… 나를 존중하고 내가 잘돼야 ▶ 만인공존… 내가 속한 집단도 발전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2’에서 주목받은 가수 장재인 씨. 그는 “내가 의지할 사람은 나”라는 다부진 생각으로 음악적 꿈을 이뤄나가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2’에서 주목받은 가수 장재인 씨. 그는 “내가 의지할 사람은 나”라는 다부진 생각으로 음악적 꿈을 이뤄나가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요즘 신세대 얘기가 나오면 으레 “개인주의적이다”라는 말이 오간다. 여기서 ‘개인주의’는 ‘공존’과는 반대되는,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뉘앙스로 해석되곤 한다.

하지만 이런 해석도 있다. 미국의 비즈니스 컨설턴트 팻 스쿠다모어는 저서 ‘대한민국 2030 경력테크에 미쳐라’에서 ‘발전적 개인주의’라는 단어를 꺼냈다. 그는 “하고 싶은 것이 구체적이란 것은 당신의 꿈이 명확하다는 것”이라며 “이는 때로 집단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바로 자신의 책무를 실천해나가는 ‘아이(I) 오블리주’. 사회 지도층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다면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책임을 다하는 ‘I 오블리주’가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발전적 개인주의는 개인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로 나아간다. 묵묵히 맡은 바 일을 하는 발전적 개인주의자들은 “개인이 잘돼야 집단을 발전시킨다”고 말한다.

여기 ‘우리’보다 ‘나’에 더 많은 가치를 두고 사는 두 명의 20대 이야기가 있다. “1등이 아닌 I등이 되고 싶다”는 두 사람. 치열한 노력, 냉정한 현실 판단. 이를 통해 하나둘 사회적 성취를 이뤄나간다. 그것은 곧 미래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 외롭지만 기쁜 창조자

케이블 채널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2’에 출연해 3위를 차지한 장재인 씨(20). 그는 유독 혼자 있길 원한다.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장 씨는 “언제나 ‘나는 어디에 속한 걸까’라고 자문하면서 살았다”고 말했다.

장 씨는 다섯 살 때부터 친척들 손에 컸다. 교사인 부모가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아 고향(광주)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사촌들의 보이지 않는 견제가 괴로웠다”는 그는 기성세대의 눈엔 ‘사회성 없는 아이’로 보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인사를 잘 안 한다는 이유로 학교 선배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더욱 외톨이가 됐다. 유일한 친구는 음악이었다. 가수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이때였다. 고교 1학년 때 뷔페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1주일에 8만 원을 벌어 여성 록 가수들의 음반을 사서 듣고, 고교를 자퇴한 후엔 20만 원으로 기타부터 샀다.

1년 후 서울로 왔다. 월세부터 학원 레슨비까지 모두 스스로 벌어 해결해야 했다. 고독함과 외로움은 무한한 음악 소재가 됐다. 수많은 도시인 속에서 부각되지 못하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노래 ‘향기 없는 소녀’가 대표적이다. 그는 홍익대 앞 클럽에서 이런 곡들을 불렀다. “처음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음악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내가 음악에 위로를 받았듯이 많은 사람이 내 음악에 위로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간 거예요.”

그는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뒤 ‘내가 의지할 사람은 나뿐’이라고 생각했다. 고독함 속에 그가 만든 노래와 음악은 사람들을 울렸다. 장 씨 또래의 20대 초반 여성들이 그처럼 포크 음악을 듣고 통기타를 배우겠다며 종로 낙원악기상가로 몰려간다. 이들은 장 씨를 ‘외골수’가 아닌 ‘1인 창조자’라고 부른다.

“‘발전적 개인주의’는 서로의 개성을 존중해주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꽃피는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선 많은 것을 경험하고 때로는 좌절하면서 스스로 뭘 원하는지 찾아야 하죠.”

○ 냉정한 현실 인식
트위터 속의 팔로어 1543명과 1년째 도움을 주고 받고 있는 직장인 이가희 씨. 그는 냉정한 현실 판단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편안한 공존을 실천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트위터 속의 팔로어 1543명과 1년째 도움을 주고 받고 있는 직장인 이가희 씨. 그는 냉정한 현실 판단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편안한 공존을 실천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차별화, 능력 개발, 치열함을 키워드로 가진 I세대의 특징 중 하나는 인맥을 다양하게 이용한다는 것이다. 가볍게 만나 쿨하게 헤어지는 과정에서 이들은 서로 얻을 것은 얻고 버릴 것은 버린다. 인맥을 ‘스펙(능력)’처럼 이용하는 것이다.

지난해 KT에 입사한 이가희 씨(25)는 트위터 속 ‘팔로어’ 1543명과 1년째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1543명 중 그가 오프라인에서 자주 만날 정도로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10∼15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씨는 순간순간마다 팔로어들에게서 도움을 얻고 있다.

이 씨가 트위터를 시작한 것은 입사 후 집(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떨어진 경기 광주시로 발령을 받은 후부터다. 트위터에서 만난 사람들의 도움은 업무로 이어진다. 지난해 말 영업 부서에 있던 이 씨는 ‘근거리무선통신망(와이파이)’ 기기를 동네 가게에 설치해야 했다. 트위터에 “광주 시내에서 와이파이 기기 없는 가게가 어딘가요”라는 질문을 던졌고 사람들은 카페, 미용실 등 그에게 수많은 정보를 알려줬다. 이 씨는 인맥을 활용해 동료들을 압도하는 성과를 거두어 회사에서 ‘혁신상’도 받았다.

이 씨는 “(인터넷에서는)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관계를 맺다보니 끈끈함보다는 얼마나 서로에게 도움이 되느냐가 중요한 요소다.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관계맺음엔 부담도 강요도 없다. 끈끈함은 없지만 상대를 편안하게 해준다. 그는 “사회가 억지로 ‘공존’하라며 떠미는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그 대신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려 할 때, 기부캠페인이나 소비자운동 등으로 구성원들이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 550명에게 물어보니 “개인주의 나쁘지 않아” 62%
“SNS가 인식 바꿨다” 39%

예전에 개인주의는 공존이나 사회 통합에 저해되는 요소로 여겨졌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공존 특별취재팀이 SK마케팅&컴퍼니 온라인 리서치 ‘틸리언패널’과 함께 11∼14일 전국 성인 5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62.5%가 개인주의라는 말을 나쁘게 여기지 않는다고 답했다. 집단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답한 비율은 11.6%에 불과했다. 연령별로는 10대(68%)와 20대(66.2%)가 40대(59.3%)보다 개인주의를 긍정적으로 보는 비율이 높았다.

개인주의에 대한 인식이 바뀐 이유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39.3%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 때문이라고 답했다. 발전적 개인주의가 제대로 뿌리 내리기 위해 보완해야 할 점으로 응답자들은 ‘도덕, 윤리 등 인성교육’을 가장 많이 꼽았다.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책임을 다하는 ‘I 오블리주’, 발전적 개인주의에 대해 전문가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일기획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최은실 프로는 “I 오블리주, 발전적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젊은 세대는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이기적인 ‘개인’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각박한 세상 속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빨리 얻기 위해 실리와 효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일기획이 지난해 10, 20대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다른 세대보다 우리가 더 치열하게 산다’고 인식하는 응답자 비율이 80.3%나 됐다.

LG경제연구원 김제문 연구원은 “발전적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젊은 세대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라며 “블로그, 트위터 등 자신을 드러내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발전적 개인주의에 대해 낙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집단을 강조했던 과거에는 개인이 실패해도 기댈 수 있는 ‘방어벽’이 존재했다면 지금은 성공과 실패를 모두 개인이 짊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스스로 발전적 개인주의라 외치지만 실제로는 그 어느 때보다 집단에 의한 ‘공존’ ‘통합’을 요구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분석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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