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당 후원금’교사·공무원 유죄]법원 “교사는 학생 인생의 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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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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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중립 의무 재확인

줄지어 나오는 피고인 26일 서울중앙지법 대법정에서 민주노동당에 가입해 당비 후원비 등을 낸 혐의로 기소된 전현직 교사, 공무원 267명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열렸다. 선고가 끝난 뒤 피고인들이 줄지어 법정 밖으로 나오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줄지어 나오는 피고인 26일 서울중앙지법 대법정에서 민주노동당에 가입해 당비 후원비 등을 낸 혐의로 기소된 전현직 교사, 공무원 267명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열렸다. 선고가 끝난 뒤 피고인들이 줄지어 법정 밖으로 나오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소속 전현직 교사와 공무원들의 민주노동당 가입사건에 대해 1심 법원은 당원 가입은 면소(免訴) 또는 무죄, 후원금 납부는 유죄 판결을 내렸다. 외견상으로는 교사와 공무원들에게 가벼운 벌금형에다 면소 판결이라는 면죄부가 주어진 듯하지만 판결 내용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 “교사 정당가입 금지는 합헌”

26일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판결 선고에 앞서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 등 피고인 3명이 교사의 정당 가입을 금지한 정당법 22조가 헌법에 어긋난다며 낸 위헌법률제청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국민의 정치적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지만 동시에 헌법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다”면서 “교육의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교사의 정당 가입을 금지한 것이 교사의 정치적 자유권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민노당 가입 교사 등을 기소하면서 그 명분으로 내세운 ‘교육과 공무원들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을 법원도 명확하게 인정한 셈. 재판부는 헌법재판소가 2004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정당법 22조가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한 점도 근거로 들었다.

교사나 공무원의 정당 가입 자체가 근본적으로 헌법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대전제를 먼저 밝힌 셈이다.

○ ‘정당 가입 면소’는 공소시효 때문


재판부가 민노당 가입 행위에 대해 대부분의 피고인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는 면소 판결을 내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교사나 공무원의 정당 가입이 정당성을 얻은 것은 아니다. 재판부가 면소 판결을 내린 것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법리적 이유 때문이었다.

그동안의 재판과정에서 검찰 측과 피고인 측은 정당가입금지 조항 위반이 ‘계속범’이냐, 아니면 ‘즉시범’이냐를 놓고 다퉈왔다. 검찰은 정당에 가입한 이후 가입 상태가 지속됐기 때문에 민노당에 가입한 뒤 탈당을 하지 않는 한 공소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피고인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법원은 ‘단체 가입’ 행위에 관한 대법원 판례가 1960년 ‘계속범’에서 ‘즉시범’으로 변경된 것에 근거해 교사 등의 민노당 가입도 ‘가입 행위’가 있었던 시점을 기준으로 공소시효(3년)를 따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민노당 가입 즉시 공소시효가 진행되기 때문에 검찰이 기소한 2010년 5월 6일을 기준으로 역산할 때에 2007년 5월 6일 이전에 가입한 사람들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정당법에 법적 미비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당법과 국가공무원법의 정당가입금지 조항이 ‘가입한 행위’에만 처벌 규정을 두고 ‘가입한 이후 당원으로서 활동한 행위’에 대해선 처벌 규정이 없어 맹점이 생긴다는 것. 다만, 적극적인 정당활동 행위는 국가공무원법의 정치활동금지 조항에 어긋나기 때문에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 당비 납부는 대부분 유죄 인정


기소된 교사와 공무원들은 민노당을 후원하기 위해 돈을 냈다고 재판에서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현행 정치자금법은 법이 정한 방법 외에 일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처벌하고 있기 때문에 피고인들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법 위반은 당연히 성립한다”고 강조했다. “민노당에 직접 후원금을 내는 행위가 적법한 것으로 알았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에 대해선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는 교사나 공무원으로서 정당에 후원금을 내는 것이 적법한지에 대해 충분히 의문이 들 수도 있었던 상황인데 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문의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 면소(免訴) 판결 ::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사면이 내려진 경우, 재판하는 시점에 해당 범죄와 관련된 처벌규정이 폐지됐거나 새 법령이 제정됐을 때에 재판부가 소송절차를 종결시키는 판결.

:: 계속범(繼續犯) ::


범죄가 발생한 시점 이후에도 지속되는 범죄. 공소시효는 범죄행위가 종료된 시점부터 시작된다. 예를 들어 감금죄는 피해자가 풀려난 이후부터 공소시효가 시작된다.

:: 즉시범(卽時犯) ::


살인, 강간 등과 같이 범죄행위가 시작하는 동시에 종료되는 범죄. 범죄행위가 성립되는 동시에 종료되기 때문에 범죄 발생 시점부터 즉시 공소시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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