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서울 금천구 한 쇼핑몰의 실내 기온이 26도를 가리키고 있다. 이날 동아일보 취재진이 찾은 백화점과 대형마트, 주요 대기업 본사 등 10여 곳의 건물 중 3곳만 실내 기온이 20도 이하였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엄마, 나 더워.”
서울 구로구의 한 대형마트 2층 생활용품 판매 코너. 이날 오후 2시경 매장의 실내 온도는 26도를 가리켰다. 부모와 함께 매장을 돌아다니던 5, 6세 정도의 여자 아이는 “나 더워”라고 짜증을 내며 입고 있던 점퍼를 벗었다. 매장을 방문한 사람 대부분은 높은 실내온도 탓에 외투의 단추를 풀거나, 한 손에 외투를 든 채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정부가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연간 2000TOE(석유환산톤) 이상 사용하는 에너지 다소비 건물 441곳에 대해 실내온도를 섭씨 20도 이하로 제한한 첫날인 24일 동아일보가 서울시내 해당 건물 10곳을 무작위로 선정해 실내온도를 측정해본 결과 7곳이 제한 온도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천구의 한 아웃렛 3층 아웃도어 매장은 이날 오후 6시경 실내온도가 26도였다. 매장에서 만난 김민지 씨(33)는 “오늘부터 온도를 낮춘다는 뉴스를 본 것 같은데 이전과 뭐가 달라진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반 업무용 건물도 에너지 절약에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종로구의 한 대기업 본사 건물 2층의 이날 오전 10시경 실내 온도는 24.5도. 직원 중엔 셔츠만 입고 근무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회사 총무팀 관계자는 “정부의 난방 제한 조치가 오늘부터 시작된다는 걸 진작 알고 있었는데 미처 챙기지 못했다”고 밝혔다.
취재진이 방문한 곳 중 정부 지침을 지키는 곳은 불과 3곳. 서대문구의 한 백화점 관계자는 “정부가 정기적으로 단속을 한다고 해서 실내 온도를 20도 이하로 맞추고 있다”며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객들이 춥다는 말을 많이 해 난감하다”고 말했다.
백화점 등 업체 관계자들은 실내 온도를 20도로 제한하는 정책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대부분 백화점과 대형마트 건물은 창이 없고 조명과 사람들의 열기가 더해지기 때문에 조금만 난방을 하더라도 온도가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 강남구의 한 백화점 관계자는 “강제로 20도를 맞추려면 냉방을 하거나 공조기를 돌려 외부 공기를 끌어들여야 하는데 오히려 에너지 낭비”라고 하소연했다. 강북구의 대형마트 관계자도 “공조기 온도를 20도로 맞춰놨는데 더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위층으로 갈수록 온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난방을 하지 않았는데도 손님이 많아 매장 온도가 20도 이상인 곳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경부는 이날부터 1주일간 2인 1조로 20여 팀을 구성해 대상 건물 441곳의 실내 온도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이날 107곳을 점검한 결과 7.5%인 8곳이 적발됐다. 지경부는 이들 건물에 대해 1차적으로 시정명령을 내리고, 추가 적발 시 과태료 300만 원을 부과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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