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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실미도 40년恨 풀어주게 부대원 유골 돌려주세요”

입력 2011-01-17 03:00업데이트 2011-01-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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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6명 유족들, 국가상대 유해 인도 소송 “유골이라도 찾아 재를 지내야 편히 눈감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향순 할머니(70)의 오빠 이서천 씨(사망 당시 32세)는 40년 전인 1971년 8월 23일 서해의 실미도를 탈출해 청와대로 향하다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서 군경과 교전을 벌여 붙잡힌 뒤 이듬해 3월 12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이 씨는 유일한 혈육인 오빠가 ‘실미도사건’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6년 전에야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연락을 받고 알았다. 43년 전 소식이 끊긴 오빠가 조리사의 꿈을 이뤄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이 씨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이 씨는 1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불쌍한 우리 오빠 장례라도 치를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말한 뒤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실미도에서 북파공작원 훈련을 받던 중 탈출하다 숨진 특수부대원 6명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사망자의 유해를 넘겨 달라며 유해인도 청구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은 유족들이 “당시 군 형법에 따라 사형이 집행될 때 유족에게 통지해야 하고 시신을 유족에게 돌려줘야 하는데도 국가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이제라도 유해를 돌려받아 최소한의 예우를 갖출 수 있게 해 달라”고 소송을 냈다고 16일 밝혔다.

1968년 대북 침투공작원 양성을 위해 만들어진 이른바 ‘실미도부대’에서 훈련을 받던 이 씨 등 24명은 1971년 8월 실미도를 탈출한 뒤 버스를 탈취해 청와대 쪽으로 가다 스스로 수류탄을 터뜨려 대부분 숨지고 이서천 씨 등 생존자 4명은 사형을 당했다.

교전 과정에서 숨진 이명구 씨(당시 26세)의 동생 이명철 씨(53)는 “40년간 애타게 찾은 유해인데, 언제까지 컨테이너에 방치해둘 거냐”며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나마 이명철 씨는 사정이 나은 편. 이향순 씨는 오빠의 유해조차 찾지 못했다. 국방부 진상규명위는 가매장돼 있던 유해 20구를 2005년에 발굴했지만 이향순 씨의 오빠를 포함한 사형수 4명의 유해는 찾지 못했다. 찾아낸 20구도 DNA 검사를 통해 4명만 신원이 확인됐을 뿐이다. 이들 유해는 신원 확인과 보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 5년째 경기 고양시의 군부대 유해봉안소(11보급대대)에 안치돼 있다.

지난해 5월 서울중앙지법은 실미도부대원 3명의 유족 21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2억53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돈이 전부가 아니다”며 분개했다. 이명철 씨는 “사람을 속여 데려다 쓰고 그렇게 죽였는데 돈만 주면 끝이냐.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형 이름만 부르다 돌아가셨는데, 이 나라에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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