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지 리모델링 이렇게]<4>민관 원스톱서비스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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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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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시설만 무려 10만곳… ‘복지 찾아 삼만리’ 이제 그만

지난달 5일 방문한 경기 화성시 무한돌봄센터. 이경국 무한돌봄센터장을 비롯해 지역자활센터·정신보건센터 사회복지사와 화성시·송산면 공무원 8명이 모여 김철순(가명·74) 씨 사례를 두고 회의가 한창이었다. 홀몸인 김 씨는 임시 컨테이너에 살고 있었으나 최근 땅 주인이 컨테이너를 치워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김 씨가 외출이 힘들다며 양로원에 입소하려고 하지 않아요. 월세보증금 300만 원을 무한돌봄기금에서 빌려드리면 어떨까요.”

“지난여름 태풍 곤파스가 지나간 이후 주거 지원 의뢰가 가장 많습니다. 무한돌봄기금 6000만 원을 모두 보증금 얻는 데만 쓸 수는 없습니다.”

“관절염도 심해 움직임이 불편한데 가족은 찾아봤나요?”

이날 회의에서는 김 씨의 경제적 형편, 건강 상태, 가족 및 친구 관계, 근로능력, 과거 기초생활보장급여 수급 경력까지 종합적인 검토를 했다. 무한돌봄기금이 월세보증금으로 나갈 경우 김 씨가 되갚기 어려운 상태라는 점을 고려해 인근 성당 이웃돕기기금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다. 또 정형외과에서 관절염 치료를 시작하고 진료일마다 차량 이동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자녀들에겐 매달 10만 원의 월세라도 마련해 보겠다는 답을 얻었다.

경기도 ‘무한돌봄센터’는 민간 사회복지서비스를 연계해 한자리에서 제공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실험 중이다. 아직 서비스 자원이 부족하고 기존 서비스 종류와 차별화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사회복지전달체계를 수요자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시도는 평가받을 만하다.

○ 국민 65% “복지 전달 비효율적”

머리 맞댄 민관 ‘이 할아버지는 어떻게 도울까요.’ 지난달 5일 경기 화성시 무한돌봄센터에서 센터 직원, 사회복지사, 공무원들이 모여 최근 집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인 할아버지를 도울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런 회의를 통해 대상자가 필요한 주거 의료 교육 서비스를 통합하여 제공한다. 화성=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머리 맞댄 민관 ‘이 할아버지는 어떻게 도울까요.’ 지난달 5일 경기 화성시 무한돌봄센터에서 센터 직원, 사회복지사, 공무원들이 모여 최근 집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인 할아버지를 도울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런 회의를 통해 대상자가 필요한 주거 의료 교육 서비스를 통합하여 제공한다. 화성=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아내가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최도경(가명·46) 씨는 아내 간호와 세 자녀의 양육을 위해 직장을 그만둬야 할 상황에 놓였다. 주민센터를 방문해 기초생활보장급여를 신청했지만 자격심사부터 지급까지 한 달가량 걸린다는 답을 들었다. 당장 수술비는 어떻게 마련할지, 아이들은 누가 키울지 걱정이었다. 갑작스러운 위기에서 공적부조만으로는 즉각적인 대응에 한계가 있다. 민관협력체계가 구축돼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했다면 최 씨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긴급의료비 지원을, 푸드뱅크에서 아이들 간식을,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아이돌봄서비스를 한곳에서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회적 위험의 증가로 서비스 다양화와 출산 및 고령화로 서비스 대상자가 확대되면서 사회복지 전달 체계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김승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2008년 11월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한 ‘복지제도에 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복지서비스가 누수 또는 중복돼 비효율적’이라고 답한 비율이 65.1%였다. 효율적이라고 답한 비율은 8.6%에 불과했다. 김 위원은 이런 비효율성의 원인을 “공급자 중심 서비스 전달체계 때문에 복지서비스 정보가 분산되고 공공과 민간의 서비스 연계가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부처별 사업 중복 난립

현재 복지사업은 보건복지부뿐 아니라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국토해양부 교육과학기술부 등 부처별로 각각 진행되고 있다. 이 때문에 유사사업이 난립하고 복지서비스의 중복 수급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 2008년 노인일자리사업 감사 결과를 보면 여성 노인 1명이 2개 부처 4개 사업에서 서비스 혜택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혜영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기본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보다 적은 복지예산을 부처별로 나눠 쓰면서 연계 협력이 안 돼 중복 지원이 나타났다”며 “부처 고립주의, 이기주의를 극복할 조정 역할을 강화해 통합서비스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원 부경대 행정학과 교수는 “복지전달체계를 기초자치단체에서 광역자치단체로 옮겨 통합 조정할 수 있도록 광역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민관 연계 서비스 시급

복지·고용·보건 관련 민간 서비스 제공기관은 116개 유형별로 10만1789곳에 달한다.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소규모 센터가 늘면서 서비스가 쪼개지고 전체 예산을 늘려도 1인당 예산은 오히려 줄어든다. 공공 전달체계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해 자원이 흩어지는 것도 문제다. 홍선미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공급여와 민간서비스를 연계하지 못하면 동일한 대상자에게 체계적인 지원이 어렵다. 대상자에게 충분히 지원하려면 공공과 민간자원을 한꺼번에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영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주민센터는 급여관리, 사회복지관은 사례관리를 담당하도록 해 민관협력체계를 통합해 원스톱서비스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복지전담 인력 확충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읍면동 복지담당공무원 1인당 담당 수급자는 591명이었다. 영국은 63명, 미국 71명, 스웨덴 76명, 일본 167명이다. 대상자 발굴은커녕 사후 관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실제 2005∼2008년 감사원의 사회복지분야 감사 자료를 취합 분석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사회복지 분야의 누수 예산은 2879억 원으로 매년 719억 원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누수 유형을 보면 ‘보조금이나 과징금 등 사후관리 부적정’이 71%(2436억 원)로 가장 높았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회복지 인력 확충 비용이 예산 누수액보다 적을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 사례별 빈곤아동 맞춤 서비스 ‘드림스타트’ 참여 이후 ▼
난폭하던 우리 아이 얼굴에 웃음이…


올 5월 울산 울주군 드림스타트센터 아동들이 두드림난타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울주군 드림스타트센터
올 5월 울산 울주군 드림스타트센터 아동들이 두드림난타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울주군 드림스타트센터
오성희(가명·37·울산 울주군) 씨는 7년 전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고 가출한 뒤 두 아들을 혼자 키웠다. 패물과 돌반지를 팔아 겨우 방 한 칸을 마련한 뒤 공장에 취직했다. 오 씨는 사채업자에 시달리던 날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밤 12시까지 잔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이 둘을 돌봐 줄 사람이 없어 방 안에 남겨둔 채 자물쇠를 잠그고 출근한 적도 여러 번. 열이 나 불덩어리가 된 아이에게 약만 준 채 출근하기도 했다. 학교에 입학한 큰아이는 결국 난폭하고 산만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고 학교에서 호출이 잦아졌다. 작은아이는 갑자기 오줌을 가리지 못한다고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유 씨는 “매일같이 큰아이에게 기저귀 찬 작은아이를 맡겼고 집안일이 성에 차지 않으면 야단을 쳤다”며 “그것이 아이에 대한 학대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고 말했다.

오씨네 가정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드림스타트’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오 씨는 자활센터에서 일을 시작했다. 큰아이는 아동발달센터에 다니며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오 씨 역시 부모 교육을 받았다. 학습지도 집으로 배달되기 시작했으며 공연관람 야외캠프 등 기회도 가졌다. 아이들은 건강을 위해 영양제를 먹기 시작했다. 평범한 행복을 되찾은 아이들은 부쩍 밝아졌다. 오 씨도 신경안정제 복용을 중단했다.

‘드림스타트’란 저소득 가정의 아동과 가족, 임산부가 필요한 보건 복지 보육 교육 서비스를 통합해 제공한다. 기초수급자와 차상위가정의 만 12세 이하 아동과 그 가족이 대상으로 사례관리를 통해 아이에게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한꺼번에 제공하는 ‘맞춤형’이다. 또 시군구 빈곤가구 밀집지역에 드림스타트센터를 세우고 보건소 학교 사회복지관 아동보호전문기관 등 지역 자원과 연계해 공공-민간 자원을 모두 동원하는 ‘통합형’이다.

서비스 전달체계가 바뀐 뒤 서서히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청소년상담원이 3년간 ‘드림스타트’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아동생활 만족감은 3.6점(100점 만점) 증가하고 부모 양육 스트레스는 3.6점 감소했다. 사회성은 2.6점 증가했고 문제행동은 1.9점 감소했다. 드림스타트센터는 2007년 16곳에서 시작해 올해는 101개까지 늘어나 7만1000여 명이 혜택을 받았다. 비슷한 프로그램인 미국의 ‘헤드 스타트’는 약 1만8000곳, 영국의 ‘슈어 스타트’는 3500곳이 운영되고 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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