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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프리맘’ 편하게 해주세요

입력 2010-10-18 03:00업데이트 2010-10-1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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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초기 조마조마한데 “왜 노약자석에…” 눈칫밥
누가 ‘프리맘’인지 맞힐 수 있나요? 임신 1∼3개월 된 초기 임신부는 쉽게 알아보기 힘들어 사회적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 초기 임신부 2명과 여대생 3명이 함께 찍은 사진에서 누가 임신부인지 구별하기 힘들다. 왼쪽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가 아이를 가진 초기 임신부다. 사진 제공 프리맘배려운동본부누가 ‘프리맘’인지 맞힐 수 있나요? 임신 1∼3개월 된 초기 임신부는 쉽게 알아보기 힘들어 사회적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 초기 임신부 2명과 여대생 3명이 함께 찍은 사진에서 누가 임신부인지 구별하기 힘들다. 왼쪽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가 아이를 가진 초기 임신부다. 사진 제공 프리맘배려운동본부
‘오전 8시 만원 지하철에 올라탔다. 간신히 몸을 실었지만 후끈 올라오는 사람들의 땀 냄새에 속이 메슥거렸다. 마침 비어 있던 노약자석에 잠시 앉았다. 5분이나 지났을까, 다음 역에서 타신 노인이 눈치를 준다. ‘저 임신했거든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삼키고 조용히 일어섰다. 오전 11시 팀장님이 회의 전 다 함께 커피 한잔을 마시자고 제안했다. 커피 일곱 잔과 별도로 나는 우유 한 잔을 시켰다. 오후 7시 팀원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선 팀원들이 연방 피워대는 담배 연기가 콧속으로 들어간다. 오후 9시 퇴근길, 배 속 아기가 야근하는 엄마를 원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원 박호윤(가명·29) 씨는 ‘프리맘(Pre-mom·예비엄마)’이 됐다는 기쁨도 잠시, 회사에는 차마 임신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비정규직 신분이라는 것도 박 씨가 망설인 이유 중 하나였다. 배가 부를 때까지 기다리려던 박 씨의 계획과 달리 아기는 결국 2주일 만에 엄마 배 속을 떠났다. 박 씨는 “늘 앉아 있는 데다 실적 스트레스가 있는 업무 특성 때문인지 주변에 유산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내 일이 될 줄은 몰랐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 매년 늘어나는 유산 인구

최근 저출산 문제 해결에 국가가 소매를 걷어붙인 가운데 한 해 자연유산으로 목숨을 잃는 태아가 10만 명을 넘어선 데 이어 자연유산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연유산은 임신중절수술 등을 제외하고 부부가 아이를 낳을 의사가 있음에도 유산한 경우로, 자연유산율을 낮추는 것이 현실적인 저출산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 자연유산율은 2007년 19.6%, 2008년 20.1%, 지난해 20.3%로 증가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유산으로 사망한 태아는 2007년 10만1898명으로 처음 10만 명을 넘은 이후 2008년 10만3662명, 지난해 10만35명으로 3년째 10만 명을 웃돌고 있다. 국내의 자연유산율은 스웨덴 12%(2007년), 영국 16%(2002년) 등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높은 편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신상진 한나라당 의원은 “임신부들의 자연유산율 증가는 저출산 시대에 인구 성장 잠재력을 저해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자연유산의 80%는 초기 임신 단계인 임신 3개월 이내에 발생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 결과 첫아이를 낳기 전 자연유산을 경험한 여성은 유산을 경험하지 않은 여성보다 평균 출생아 수가 15% 적은 것으로 나타나 초기 임신부들에 대한 배려가 시급한 상황이다. 박문일 한양대 의학전문대학원장은 “사회적 배려와 정책을 통해 유산율이 낮아지면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임신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임신 12주 이내 임신부들의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사회적으로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 초기 임신부에 대한 배려 시급

보건복지부가 10일 발표한 임신부 보호 엠블럼. 임신 초기로 잘 드러나진 않지만 아이를 가진 엄마라는 당당한 모습을 표현했다.보건복지부가 10일 발표한 임신부 보호 엠블럼. 임신 초기로 잘 드러나진 않지만 아이를 가진 엄마라는 당당한 모습을 표현했다.
지난해 10월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임신부와 일반인 3582명을 대상으로 ‘임신부 배려 인식’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일반인은 93.9%가 ‘임신부를 배려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지만 정작 임신부들은 64.5%만이 배려를 받았다고 답했다. 인구보건복지협회 측은 “일반인이 인식하고 있는 배려의 수준과 실제 임신부들이 필요로 하는 배려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임신 7개월째인 유윤화 씨(26)는 “입덧 증세 때문에 대중교통 노약자석에 앉으면 나이 드신 분들이 ‘버릇없게 앉아 있다’며 혼낼 때가 있다”며 “처음에는 서러워 울곤 했는데 요즘은 일부러 산모수첩을 펼치고 앉는 노하우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근영 대한모체태아의학회장(강남성심병원장)은 “며칠 쉬라고 권고해도 회사일이 많고 경쟁에서 뒤질까 봐 출근을 고집하는 임신부가 많다”며 “이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없으면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고 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프리맘 엠블럼프리맘 엠블럼
보건복지부는 초기 임신부 보호를 위해 2005년부터 매년 10월 10일을 ‘임산부의 날’로 지정한 데 이어 올해 국민 공모를 거쳐 임신부 보호 엠블럼을 발표했다. 복지부는 “이 엠블럼은 임신 초기 여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자리양보 등의 배려를 권장하기 위해 만들었다”며 “이 엠블럼을 담은 머리끈과 가방고리, 휴대전화고리 등을 만들어 배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6일에는 서울시의사협회, 국제이미지컨설턴트협회 한국지부(AICI KOREA) 등이 주축이 된 ‘프리맘배려운동본부’가 출범해 예비엄마 보호 운동에 나섰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초기임신휴가 도입땐 출산율 크게 늘 것” ▼
현행법 산전-산후로 휴가 못 나눠써 출산율 1% 늘면 산전휴가 비용 상쇄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초기 유산을 줄이기 위해선 ‘초기임신휴가’와 같은 산전휴가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임신 초기 휴가의 제도화로 유산율을 낮춰 출산율을 높이자는 것이다. 김숙희 산부인과 전문의는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초기 관리와 마지막 출산인데 현재 출산휴가는 있지만 임신휴가는 없다”며 “임신 초기 4∼6주 정도에 짧게라도 임신휴가를 주는 것을 제도화할 수 있다면 출산율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근로기준법상 현행 산전후 휴가는 90일이다. 산전과 산후 휴가를 나눠 쓸 수 없으며 45일 이상은 산후에 쓰도록 돼 있다. 하지만 출산 후 육아 등을 고려해 휴가를 출산 뒤에 몰아서 쓰고 있는 임산부가 많다. 이 때문에 현실적인 대안으로 출산휴가를 산전과 산후로 나눠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도 산전과 산후 휴가 분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회에도 산전 임신부를 배려하기 위한 법률안이 제출돼 있다.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과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은 각각 산전후 휴가를 120일, 150일로 연장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산전휴가를 조금 늘리더라도 초기 유산을 줄여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면 국가경쟁력 제고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산전후 휴가에 지급된 고용보험급여는 1785억 원. 산전후 휴가 일수를 현행 90일에서 OECD 평균인 18주에 맞춰 30일 늘리고 이 기간을 임신 초기에 쓸 수 있도록 하면 연간 595억 원가량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보건복지부 연구용역보고서인 ‘출산율이 일자리 창출과 생산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에 따르면 출산 증가율이 5% 증가할 때 연간 3300억 원의 생산유발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산전휴가를 30일 늘리더라도 출산 증가율이 1%만 늘어나면 660억 원의 생산유발효과가 생겨 산전휴가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계산이다.

이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 황용현 홍보팀장은 “임산부를 과중한 업무나 시간외근로에서 제외하는 등 법적 보호장치가 마련돼 있는 만큼 새로운 휴가를 도입하는 것보다 기존 연차휴가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이 낫다”고 말했다.

박진우 기자 pjw@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임신부 6명 중 1명 음주
▲2010년 8월4일 동아뉴스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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