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우리학교 공부스타/진명여고 2학년 김지선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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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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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때 처음 온 가슴앓이… 이 악물고 공부, 병 딛고 판사 꿈꿔요
기흉 증세로 수술까지 진통제 맞으며 문제풀기 이젠 나만의 공부법 찾았죠

한 학기 동안 ‘기흉’이 세 번이나 발병해 그때마다 일주일씩 입원해야 했던 서울 진명여고 2학년 김지선 양은 “병에 지기싫어 더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한 학기 동안 ‘기흉’이 세 번이나 발병해 그때마다 일주일씩 입원해야 했던 서울 진명여고 2학년 김지선 양은 “병에 지기싫어 더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기흉.’ 허파 윗부분이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터져 허파에서 빠져 나온 공기가 흉강에 차는 병이다. 가슴에 통증이 오고 숨을 크게 쉬거나 자세를 약간만 바꿔도 심하게 아파 호흡곤란을 일으킨다. 체격이 급격히 성장한 키 크고 마른 청소년에게 주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김지선 양(17·서울 진명여고 2)은 164cm로 키가 아주 큰 편은 아니다. 그런데 중3 때 기흉이 발병했다. 고2 들어서는 세 번이나 걸렸다. 그때마다 병원에 입원해 일주일을 보냈다. 가슴이 조금만 아파도 혹시 기흉일까 하며 병원에 달려가길 수차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에 이르자 공부하기도 힘들었다. 몸이 이상하다 싶으면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심란해졌다. ‘왜 나만 이러나’ 하는 생각에 눈물도 흘렸다. 성적은 떨어졌을까? 오히려 올랐다.

“아픈 만큼 오기도 커졌어요. 고3 때 기흉에 걸려 대학을 잘 못간 경우를 많이 들었는데 그렇게 되기 싫었거든요. 그래서 더 독해진 것 같아요. 병 때문에 내 꿈이 좌절당할 수 없잖아요. 어디 한번 계속 (폐포가) 터져 봐라. 난 끝까지 공부한다.”》
중학교 때부터 김 양은 무엇이든 지기 싫어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잘 놀았다. 다른 과목의 등수는 중1 때 200∼350등에서 중3 학기말엔 1∼40등으로 크게 올랐지만 수학, 영어 성적이 유독 발목을 잡았다. 전교생 760여 명 중 222등, 108등에 각각 머물렀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중3 겨울방학 때 공부법을 돌아봤다. 어느 순간 수학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업도 제대로 안 듣고, 교과서에는 거의 손도 안 댄 채로 3년을 보낸 것. 문제집도 한 학기에 2권 이상 푼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김 양은 제일 먼저 문제 많이 풀기를 시도했다. 수업시간에도 선생님 설명에 집중하기보다는 혼자 문제집을 풀었다. 문제집 수가 4권으로 늘었다. 하지만 첫 시험에서의 수학성적은 85점. 기대에 못 미쳤다. 어려운 문제를 많이 풀어 봤는데도 불구하고 응용문제까지 다 맞히기엔 한계가 있었다.

김 양은 고1 여름방학부터 다시 공부법을 바꿨다. 기본으로 돌아가서, 수학개념을 설명만 읽고 끝내는 게 아니라 확실히 익히기로 한 것이다. 우선 문제집의 개념설명을 보지 않고 써내려 갈 수 있을 때까지 외웠다. 수학교과서도 이때 처음 폈다. 2학기가 시작하고 나서는 처음으로 수학수업을 들었다.

“교과서가 쉬워 보이지만 어느 문제집보다도 개념을 중시한 문제로 채워져 있다고 느꼈어요. 학교 선생님들도 개념을 이용해서 문제를 정말 쉽게 설명해 주시는 거예요. 저 혼자 익히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다니던 학원도 끊었어요.”

결과는 놀라웠다. 2학기 중간고사 수학과목에서 100점을 받았다. 1학기 등수 129등에서 2학기엔 22등으로 훌쩍 뛰었다. 그는 “기초가 탄탄하게 잡혀 있어 그런지 아무리 어렵게 꼬아 낸 문제도 신기할 정도로 술술 풀렸다”고 했다. 영어도 수학처럼 여러 가지 공부법을 시도하며 자신만의 공부 노하우를 터득해 나갔다.

2학년에 올라 더욱 공부에 박차를 가할 무렵인 올해 3월, 일이 터졌다. 기흉이 찾아왔다. 중간고사 3주 전이었다. 열의가 넘치는 신학기, 하루 평균 5시간씩 자면서 공부하던 상황이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돌아오니 한 주가 흘렀다. 재발이 우려돼 마음껏 시험공부를 하기도 어려웠다.

“기흉은 꼭 병원에 가서 속에 찬 공기를 빼내고 산소치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생활에 지장을 많이 받아요. 시험 때 발병할까봐 노심초사하느라 스트레스가 심했죠. 무엇보다 진짜 아파요. 숨쉬기가 힘들고요. 정말 짜증나게 아파요.”

7월엔 기말고사가 끝난 기념으로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던 중 허파꽈리가 터졌다. 그 후로는 친구들과 놀러가는 것도 두려웠다. 예쁘게 꾸미고서 친구들과 서울 이대 앞, 홍대 앞을 돌아다니며 학업 스트레스를 풀어 온 활발한 김 양을 기흉은 집요하게 괴롭혔다.

세 번째로 기흉이 찾아 온 이달 초 그의 가족은 수술을 결정했다. 몸통에 세 개의 구멍을 뚫고 기흉의 원인이 되는 공기주머니를 잘라냈다. 몸속에 삽입된 관이 가슴을 아프게 찌를까봐 병원 침대 위에 있는 일주일간 앉아서 자야 했다. 이틀은 직각으로 앉아 자고 나머진 45도로 비스듬히 앉아 잤다.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지긋지긋한 기흉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그저 행복했다.

“하루 세 번씩 진통제를 맞으면서도 수학의 정석하고 영어 문제집을 푸는 거 있죠? 저는 얘 이렇게 독한 게 싫어요. 걱정돼서요. 주름살 없이 해맑게 크기만 바랐지, 공부하라고 잔소리 한 적도 없는데….” 인터뷰를 지켜보던 어머니의 한마디에 김 양은 “공부하라고 닦달했으면 아마 안 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김 양은 사회정의에 관심이 크다. 두 달 전 학교의 ‘희망 직업인과의 만남’ 프로그램을 통해 판사 선배의 강연을 듣고 나서 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법 관련 도서와 신문을 틈나는 대로 읽다 보면 화가 날 때가 많다. 한 정규직 여성이 임신을 이유로 회사에서 해고당한 후 손해배상을 충분히 받지 못한 사례가 어이없었다. 아동 성범죄자의 처벌 수위가 약한 것 같아 불만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좋아하고 부모님이 살짝 다투실 때면 즉각 중재에 나선다는 그는, 서민의 편에 선 정의로운 판사가 되고 싶단다.

요샌 가끔 마음이 흔들린다. “수술을 받은 후로 자꾸 의사에 끌리기도 해요. 기흉으로 하도 병원을 들락날락거려서 그런가, 의사가 돼서 기흉을 연구해 보고 싶어서요. 벌써 인문계를 선택하긴 했지만….” 김 양은 “수술도 했겠다, 이제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데 나만의 공부법을 밀고 나가다 보면 가능하지 않을까요?”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재원 기자 jjw@donga.com
※‘우리학교 공부스타’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중하위권에 머물다가 자신만의 학습 노하우를 통해 상위권으로 도약한 학생들을 추천해 주십시오. 연락처 동아일보 교육법인 ㈜동아이지에듀. 02-362-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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