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JOB 챔피언]<5·끝>여성-노인을 일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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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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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여성고용률 70% 최상위권… 비결은 시간제 근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 교외에 사는 클라우디아 헨드릭스 씨(29·여)는 시간제로 일하는 호텔 직원이다. 일주일에 사흘을 8시간씩 총 24시간만 일한다. 월요일과 금요일에 출근하며 나머지 하루는 회사와 협의해 결정한다. 근무시간도 사흘 중 하루는 오전 7시∼오후 3시, 오후 3∼11시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그는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사회활동을 시작한 이후 전일제(풀타임)로 근무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아이를 잘 보살피고 가정일도 잘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파트타임 일자리가 많은 덕택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고 가족들도 챙길 수 있게 됐어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08년 기준으로 네덜란드의 15∼64세 여성 고용률은 70.2%로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각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여성 일자리가 지난해 12만7000개나 사라지면서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한 고용 악화의 직격탄을 맞은 한국으로서는 그 비결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워킹맘 천국’ 네덜란드

직장여성 90% 파트타이머
가사-회사일 동시에 챙겨

‘고용의 질 향상’ 스웨덴

의사결정에 여성참여 확대
주요회의 남녀비율 똑같게

‘일하는 황혼’ 일본

사회적 기업 ‘노협’ 만들어
65세이상 4800명에 일자리

네덜란드가 여성 고용에 강점을 갖고 있다면 일본은 고령자 고용에서 앞선 나라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한국이 각별히 눈여겨봐야 할 대상이다.

비(非)경제활동인구로 노동시장에서 소외된 여성과 고령층을 일하게 만들어 OECD 평균(70.8%)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의 경제활동 참가율(2월 현재 59.5%)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일. 정부 당국자들이 일자리 대책을 세울 때 무엇보다 많이 고민해야 할 과제다.

○ 가정-직장 병행 네덜란드 여성


클라우디아 헨드릭스 씨는 일주일에 3일만 호텔에서 일하면서 가정일과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헨드릭스 씨는 “파트타임제는 가정과 직장을 동시에 챙겨야 하는 여성들에게 잘 맞는 근로 형태”라며 “아이들을 직접 돌보는 시간이 많고 경제적으로도 조금이나마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암스테르담=이세형 기자
클라우디아 헨드릭스 씨는 일주일에 3일만 호텔에서 일하면서 가정일과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헨드릭스 씨는 “파트타임제는 가정과 직장을 동시에 챙겨야 하는 여성들에게 잘 맞는 근로 형태”라며 “아이들을 직접 돌보는 시간이 많고 경제적으로도 조금이나마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암스테르담=이세형 기자
사회에 진출한 뒤 얼마 안 돼 가정을 꾸린 헨드릭스 씨에게는 집안일과 병행이 가능한 일터가 절실했다. 특히 아이들이 생긴 뒤로는 더욱 그러했다. 이런 그에게 ‘파트타임제’와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가정과 직장이란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줬다.

네덜란드 교육문화과학부의 얀티나 발라번 해방교육국장은 “네덜란드에서도 여성이 가사노동, 출산, 육아의 부담을 남성보다 훨씬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며 “여성의 파트타임제 근로와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이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현재 네덜란드의 일하는 여성 중 90% 정도가 파트타이머로 근무하고 있다. 일반 사무직뿐 아니라 전문직에서도 파트타이머로 활동하는 여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글로벌 회계법인인 언스트앤드영 네덜란드 본부에 근무하고 있는 리셀로러 판 데르 헤이던 씨(38·여). 암스테르담대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이탈리아계 기업들의 세무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세무 전문가다.

언스트앤드영에서 7년간 풀타임으로 일하다가 5년 전 아이를 낳은 뒤부터는 일주일에 나흘만 8시간씩 일하는 파트타이머로 생활하고 있다. 조만간 그는 일주일에 이틀(16시간)만 근무할 계획이다. 지난달 시의회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주당 20시간을 의정활동에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다. 파트타이머가 됐지만 판 데르 헤이던 씨의 회사생활에서 본질적으로 달라진 건 없다. 근무시간 단축으로 임금이 줄긴 했지만 중요성이 떨어지는 업무를 맡게 된다거나 회사 내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는 일은 없다.

그는 “여성들의 파트타임 근무를 장려하는 네덜란드의 사회문화가 여성 고용률이 높은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 여성 고용의 ‘질’을 높이는 스웨덴

전통적으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한 스웨덴에서는 여성 경제활동의 ‘질’을 높이는 것이 최근의 관심사다. 이제 여성을 많이 뽑고, 공공 육아시설을 늘리는 식의 지원은 기본사항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정부기관, 기업, 대학 등에서 육아와 가사노동의 부담이 큰 여성들을 배려해 오전 9시 이전이나 오후 4시 이후에 회의나 특별활동을 자제하는 것과 같은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스웨덴의 대표적인 대학 중 하나인 스톡홀름대는 성평등위원회를 두고 적극적으로 여성 경제활동의 질적 향상을 추구하고 있는 곳으로 꼽힌다. 이 대학에선 중요한 의사결정과 관련된 회의를 할 때면 구성원의 절반을 여성으로 채우도록 하고 있다.

최성지 여성가족부 여성정책과장은 “여성들의 경제활동 수준을 높이려면 공공부문부터 여성들의 의사결정 참여 기회를 늘리는 게 효과적”이라며 “현재 12.2%인 국내 공공기관의 여성 임원 비율을 15%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기관들을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 노인들이 일자리 창출하는 일본

전철역 자전거주차장에서 일하는 이시타 유이치 씨가 시민들의 자전거를 정리하고 있다. 그는 “많은 돈은 아니지만 일을 통해 스스로 생활비와 용돈을 마련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기분까지 들어 출근길이 늘 설렌다”며 활짝 웃었다. 가와사키=김창원 특파원
전철역 자전거주차장에서 일하는 이시타 유이치 씨가 시민들의 자전거를 정리하고 있다. 그는 “많은 돈은 아니지만 일을 통해 스스로 생활비와 용돈을 마련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기분까지 들어 출근길이 늘 설렌다”며 활짝 웃었다. 가와사키=김창원 특파원
올해 75세인 이시타 유이치(石田勇一) 씨는 매일 오전 5시 50분이면 어김없이 집을 나서 가와사키 시 미조노구치역으로 향한다. 그는 10년째 미조노구치역에 있는 자전거 주차장에서 자전거 관리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시타 씨는 오전 6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3시간 동안 자전거 정리정돈과 청소를 한다.

이시타 씨는 “급하게 출근하면서 아무렇게나 방치해놓고 간 자전거를 일일이 정리하다 보면 때로는 손자뻘 되는 젊은이들과 말싸움을 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이 나이에도 할 일이 있다는 게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자전거 관리가 끝나면 일주일에 세 번씩 주택 정원 청소를 한다. 시간당 800엔에 불과하지만 한 달 평균 그가 손에 쥐는 돈은 10만 엔. 그는 “이 돈과 다달이 나오는 연금을 합치면 생활비와 용돈은 거뜬하다”고 말했다.

이시타 씨를 고용한 회사는 일본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노협). 중고령자나 취업 취약계층이 스스로 출자하고 경영하는 이른바 사회적 기업이다.

지난해 3월 말 현재 노협의 총매출액은 257억 엔으로 1만1217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이 전체 인력의 43%에 이른다.

초기에는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공원 청소처럼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고 연령이 높아도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일들 위주로 고령자들을 채용했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이런 일자리도 구하기 힘들어지자 노협은 빌딩 종합관리, 병원 청소 및 세탁, 급식서비스, 개인주택 정원 손질, 묘지 관리 등 다양한 분야의 ‘숨은 일자리’를 찾아내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사실상 100%에 가까웠던 지자체 발주 용역이 현재는 60%까지 떨어지고 나머지 40%를 민간 부문에서 창출하고 있다.
■ 네덜란드 발라번 교과부 국장
▼“보육시설-방과후 활동 확대… ‘여성 배려’ 인프라 구축”▼


“네덜란드에는 여성을 배려하는 고용문화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우리는 거기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고용여건을 더욱 여성 친화적으로 만들려고 노력 중입니다.”

네덜란드 교육문화과학부의 얀티나 발라번 해방교육국장(사진)은 “여성 고용을 늘리려면 여성들이 마음 놓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일례로 최근 네덜란드 정부는 공공 보육시설의 운영시간을 대폭 늘리는 한편 학교의 ‘방과 후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는 작업에 착수했다. 직장에 다니는 여성들이 마음 놓고 자녀를 맡길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과거에는 공공 육아시설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문을 열었지만 지금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하고 있다”며 “소도시의 운영시간도 점차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방과 후 프로그램의 종료시간도 오후 5시에서 오후 7시로 연장되는 추세다.

또 중고교에 다니는 여학생에 대한 적성검사를 강화해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원하는 직업을 정확히 파악하도록 도울 계획이다. 졸업 후에도 적성을 알지 못해 방황하는 비경제활동인구를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발라번 국장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건 긍정적이지만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다 보니 고위직으로 올라가는 사례가 상대적으로 적다”며 “이는 앞으로 네덜란드 사회가 풀어가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 박현진 경제부 차장
▽경제부
미국 뉴욕·몽고메리=홍수용 기자
영국 런던·브라이턴·셰필드, 독일 프랑크푸르트=박형준 기자
호주 시드니=문병기 기자
스위스 취리히·베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헤이그=이세형 기자
▽국제부
일본 도쿄=김창원 특파원
중국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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