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金국방 답변 조절 靑메모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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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께서 답변이 어뢰쪽으로 기우는 감을 느꼈다고…’
“대통령 지시 아니다” 해명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2일 국회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해 답변하던 중 발언 수위를 조정할 것을 지시하는 청와대의 메모가 전달되는 장면이 언론사 카메라에 잡혔다. 당시 김 장관은 침몰 원인과 관련해 북한의 어뢰 공격설을 제기했다.

A4 용지에 필기체로 정리된 메모는 “장관님! VIP께서 외교안보수석(→국방비서관)을 통해 답변이 어뢰 쪽으로 기우는 것 같은 감을 느꼈다고 하면서 (기자들은 그런 식으로 기사 쓰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여당 의원 질문형식이든 아니면 직접 말씀하시든지 간에 안 보이는 것 2척과 이번 사태와의 연관성에 대해 침몰 초계함을 건져봐야 알 수 있으며, 지금으로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조사하고 어느 쪽도 치우치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시고”라고 돼 있다.

VIP는 관가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지칭하는 은어다. 즉, 이 대통령이 김성환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과 김병기 국방비서관을 통해 지시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안 보이는 2척’은 24∼27일 우리 측 경계망에 잡히지 않은 북한 잠수정 2척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메모 내용대로라면 김 장관이 북한이 연루돼 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자 이 대통령이 참모를 시켜 신중한 답변을 주문하려 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대통령이 국회에서 답변 중인 장관에게 직접 발언 내용과 방식을 주문했다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발언 통제 논란이 일 수도 있다.

이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5일 “국방비서관이 TV를 통해 김 장관의 발언 내용을 보다가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전화를 받은 국방부 근무자가 이를 이 대통령의 뜻으로 추측해 그런 메모를 전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국방비서관의 단독 플레이라는 것이다. 김성환 수석은 당시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도 “장관이 받은 메모는 실장급 간부가 국방비서관의 전화를 받고 내용을 받아 쓴 것인데 국방비서관은 VIP란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국방부 실장이 비서관이 말한 내용을 어떻게 마음대로 대통령의 지시라고 메모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설령 청와대의 해명대로 이 대통령이 직접 메모 전달을 지시한 게 아니라 해도 청와대가 장관의 답변을 TV 중계로 지켜보다가 실시간으로 주문을 넣은 것은 침몰 원인과 관련한 국방부의 ‘앞서 가는 설명’에 청와대가 얼마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번 사건 발생 이후 청와대는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원인을 규명하자며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지만 국방부는 북한 연루 가능성을 공공연히 거론해 왔다. 청와대 내에서는 ‘국방부가 자기 방어 차원에서 한 발짝 앞서 나가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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