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By China’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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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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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인부도 팀장도 10명 중 8명 中동포
도배-인테리어 제외하고 힘든 골조공사 中동포 맡아
국내 숙련공 임금낮아 외면… “내국인 10년내 고갈” 우려

지난달 27일 오후 4시경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 4층 내벽을 쌓는 골조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현장 골조팀장인 김모 씨(49)는 연방 크레인 기사와 무전기로 교신을 주고받았다. 김 씨는 중국 지린(吉林) 성 출신의 중국동포로 2004년 한국에 들어왔다. 그의 밑에서 일하는 중국동포 인부 12명은 평소 중국어로 대화한다.

김 씨는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다 보니 한국말을 제대로 못하는 동포들도 있다”고 전했다. 현장 관계자는 “4, 5년 전엔 하급 인부로 일하는 중국동포는 많았어도 팀장급은 한 명도 없었는데 지금은 10명의 팀장 중 한국인이 2명이고 8명은 중국동포”라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 국내 건설현장에 대규모로 유입된 중국동포들은 대부분 허드렛일을 하는 잡부로 일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목수, 형틀, 철근 등 각 영역에서 숙련공으로 성장하거나 중간 관리자급 팀장으로 승격돼 건설현장의 품질을 좌우하고 있다. 건설업계에서 “요즘 아파트는 ‘메이드 바이 차이나’ 제품”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은 이런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 중국동포 없이는 아파트 못 지어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신당동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 ‘알루미늄 폼’으로 불리는 거푸집을 조립해 지하주차장 벽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15개 동의 아파트가 들어서는 이곳에서 인부들은 틀을 조립해 만든 뒤 콘크리트를 부어 건물을 쌓아올렸다. 이 현장의 2개 형틀팀 29명 중 23명이 중국동포다.

중국동포 임모 씨(41)는 “건설 현장에서 팀장들은 주로 인맥을 통해 일할 사람을 불러 모은다”며 “하급 인부로 일하는 동포들도 말이 잘 통하고 같은 처지라 웬만하면 믿을 수 있는 동포 팀장 밑에서 일하는 걸 선호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십장’으로 불리는 팀장은 팀원들을 모아 1년가량 걸리는 공사 현장을 지휘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내국인들이 일이 고되다는 이유로 공사장을 떠난 뒤 빈자리를 메운 중국동포들은 빠르게 현장 분위기에 적응해 지금은 팀장급 숙련공이 됐다”고 말했다.

5년 전만 해도 내국인과 중국동포의 임금차가 컸다. 하지만 내국인 숙련공들이 저임금에 실망해 현장을 뜨고 중국동포들이 잡부는 물론 팀장까지 차지하면서 요즘은 임금차가 거의 없어졌다. 21년 경력인 하청업체의 김모 소장(44)은 “최저가낙찰제로 바뀌면서 단가를 낮추려다 보니 하청업체들이 임금을 올리기 어려운 형편이 됐고, 때마침 저임금의 중국동포들이 유입되면서 건설현장의 임금은 10여 년째 제자리”라고 말했다.

○ 중국동포마저 떠나면…

취재팀이 지난달 26, 27일 이틀간 서울의 아파트 공사현장 4곳을 둘러본 결과 숙련된 한국인 근로자들은 40대 후반이 주류를 이뤘으며 30대 이하의 젊은 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도배, 인테리어 등 마감공사 분야를 제외하면 노동 강도가 센 골조공사는 대부분 중국동포가 맡고 있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국내 건설업계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약 20만 명으로 아파트나 빌딩 등 건축현장 가운데 외국인 근로자가 일하는 곳은 전체 공사장의 80%에 이른다. 지난해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작성한 ‘건설경기 및 건설산업 인력구조 분석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건설업계 인력 수요는 지난해 135만 명에서 2013년 146만 명으로 늘어나지만 한국인 숙련인력은 15만 명 부족할 것으로 추정된다. 건설업체들의 76.1%는 ‘이미 내국인 숙련인력이 없어졌거나 10년 내에 고갈될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심규범 연구위원은 “외국인들로 한국인 숙련인력을 대체하는 것엔 한계가 있다”며 “건설업체들이 노무비를 지나치게 깎을 수 없도록 건설 직종에 최저임금제를 도입해 국내 인력을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건설회사들은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중국동포의 국내 유입이 줄어들까봐 걱정이다. 20대 중국동포들 역시 한국인처럼 건설현장에서 일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중국 현지에서 좋은 직업을 구하기도 훨씬 쉬워졌다. 한 현장 소장은 “주변 중국동포들을 보면 1년에 1000만 원가량 돈을 모아 가는데 한국에 오는 경비를 빼면 중국에서 일하는 것과의 차이가 점차 줄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중국 위안화의 가치가 높아져 한국행을 주저하는 중국인이 많지요. 대부분의 젊은이는 현지에서 취업합니다. 우리같이 나이 많은 사람들이나 취업이 안 돼 여기로 오는 거지요.” 중국동포 팀장인 김 씨의 말이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최연진 인턴기자 고려대 생명과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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