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 ‘14세 가장’이 보내온 감사의 크리스마스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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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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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일 뿐이었는데… 제 앞에 암소가 나타났어요”

○ 암소 값 보낸 부산의 40대 주부
50만원 부담되는 액수였지만
가족 걱정하는 맘 예뻐 쾌척
열살 큰딸도 13만원 보탰죠

○ 장문의 편지 보낸 프랭크
버려진 빈집서 열식구가 살아
아줌마가 선물한 ‘새식구’ 큰 도움
나도 커서 ‘사랑의 전도사’ 될게요

6일 우간다 키보가 시에 사는 소년가장 프랭크 군이 한국의 후원자에게서 암소와 송아지를 선물받은 뒤 마을의 나무에 매어 놓고 기뻐하고 있다. 프랭크 군은 이날 후원자가 보낸 선물이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갖고 있는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었다. 사진 제공 월드쉐어
6일 우간다 키보가 시에 사는 소년가장 프랭크 군이 한국의 후원자에게서 암소와 송아지를 선물받은 뒤 마을의 나무에 매어 놓고 기뻐하고 있다. 프랭크 군은 이날 후원자가 보낸 선물이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갖고 있는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었다. 사진 제공 월드쉐어
부산에 사는 정지영(가명·40) 씨는 올해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자신이 1월부터 후원하던 아프리카 우간다의 프랭크 세부라임 군(14)에게서 장문의 감사 편지가 도착한 것. 정 씨는 “집 떠나 객지에서 고생하는 친아들이 보내온 편지처럼 반가웠다”고 말했다. 우간다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55달러(2008년)에 불과한 데다 많은 빈민들은 하루에 1달러(약 1180원)가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한다. 키보가 시에 사는 프랭크 군은 누군가가 짓다 버려둔 방 2칸짜리 집에서 할머니, 친척동생 8명과 함께 지낸다. 프랭크 군의 부모님은 에이즈로 프랭크 군이 어렸을 때 사망했다. 프랭크 군은 키가 165cm로 또래보다 크지만 몸무게가 46kg밖에 안 나가고 허약한 편. 할머니는 코피가 자주 나는 프랭크 군이 걱정스럽지만 조숙한 이 손자는 가족의 생계가 걱정이다.

프랭크 군은 지난달 월드쉐어 결연아동목록의 ‘갖고 싶은 것’ 항목에 ‘암소’를 적었다. 이를 본 정 씨는 프랭크 가족에게 왜 소가 필요한지를 알아본 뒤 50만 원을 보내 현지 선교사를 통해 암소와 송아지를 사줬다. 6일 도착한 소는 프랭크 가족의 소중한 생계수단이 됐다. 프랭크 군이 영어로 감사 편지를 썼고, 선교사가 이 내용을 컴퓨터로 옮겨 한국에 있는 정 씨에게 25일 e메일로 보냈다.

“다른 아이들은 개인적인 물건을 갖고 싶어 하는데, 가족의 생계를 생각해 소를 선물받고 싶다는 마음씨가 예쁘잖아요.”

정 씨는 통화에서 열 살과 다섯 살배기 딸 둘을 키우는 평범한 주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정 씨 남편은 경남지역 한 대학의 교직원. 정 씨는 “프랭크가 에이즈로 부모님을 잃은 뒤 동생들을 돌보는 등 가장 역할을 하고 있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정 씨는 소를 보낼지를 결정하기 위해 가족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큰딸은 명절에 친척 어른들께 받은 용돈을 모아놨던 거금 13만 원을 보태기로 했다. 아이들은 평소에도 착한 일을 해서 용돈을 받으면 10분의 1을 ‘아프리카의 오빠, 동생’ 몫으로 떼어놓는다.

“국내 중산층 가정에서 자신의 아이에게 피자 한 판, 자장면 한 그릇 사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 돈이면 아프리카의 아이들은 한 달을 살 수 있대요.”

정 씨는 “작은 사랑이 아이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한 달에 10만5000원으로 프랭크 군과 각각 열한 살, 아홉 살인 우간다 여자 어린이 2명의 학비와 생계비를 후원하고 있다. 아프리카, 아시아 23개 저개발국가 아이들과 한국인의 1대1 결연사업을 벌이고 있는 저개발국 지원단체 월드쉐어를 통해서다. 국내 지원단체에도 꼬박꼬박 기부금을 내고 있는 정 씨는 “변변치 않다”라며 실명으로 보도되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프랭크가 보내온 감사편지 전문 ▼

후원자님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저는 잘 지냅니다. 후원자님 덕분에 학교에 잘 다니며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보내주신 운동화를 신고 축구도 하면서 건강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온종일 땅콩농장에서 일해서 번 돈으로 저희를 돌보고 계시는 할머니께는 늘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저는 아직 어리고 몸이 건강한 편이 아니어서 할머니께 해드릴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요. 할머니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후원자님께 보내는 글에 ‘암소가 필요하다’고 적었는데 정말 제 앞에 암소가 나타났어요! 암소가 있으면 우유를 먹고 건강해져서 더는 코피도 흘리지 않고 고생하시는 할머니도 걱정시켜드리지 않고 동생들 배도 덜 고프고 좋을 것 같았거든요. 그것은 그냥 꿈일 뿐이었는데…. 도움을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막상 소를 보니 처음에는 가까이 가기가 조금 무서웠어요. 지금은 암소랑 친해져 우유도 많이 짜고 잘 돌보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새 식구가 생겨서 다들 너무 행복해하고 있어요. 이번에 사주신 송아지도 키워서 팔면 저도 계속 공부할 수 있고, 동생들도 학교에 가서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우간다에는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고 저희 엄마, 아빠도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으로 돌아가셨거든요. 이렇게 큰 도움과 사랑을 받았으니 저도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여기 아프리카에는 크리스마스가 있는데, 한국에도 크리스마스가 있겠죠? 언젠가는 꼭 한번 뵙고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얼굴을 아직 모르니, 사진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후원자님,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후원자님의 아들 프랭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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